북한 어선 잇단 동해 표류 … 김정은 수산물 독려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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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달 15일 군(軍)이 운영하는 ‘8월 25일 수산사업소’를 현지지도하고 있다. 김정은은 이날 지난해 5월 선물한 어선 4척에 “풍요한 가을처럼 바다에서도 물고기 대풍을 안아오라”며 ‘단풍’호라고 명명했다. 수산사업소 관계자들이 김 위원장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지난달 30일 동해의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우리 해군에 구조됐던 북한 선박은 한 달 가까이 해상에서 표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배에 타고 있던 선원 4명이 해상에서 한 달을 버텼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6일 “지난달 30일 해군이 구조해 다음날 북한으로 돌려보낸 북한 어선과 선원 4명은 지난달 초 함경북도 신포항을 출항한 직후 기관 고장을 일으켜 해상에서 운항 불능 상태가 계속됐다”며 “당초 이들은 신포 연근해에서 조업하고 곧바로 복귀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식량과 연료도 충분치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북한 어선은 함경북도 신포항에 있는 수산사업소 소속이었다. 이 당국자는 “식량 부족 상태에서 이들은 표류하면서도 고기잡이를 해서 식량을 조달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 선원들은 구조된 직후 귀환을 요구해 하루 만에 선박과 선원을 북으로 돌려보내는 바람에 한 달간 어떻게 생활했는지에 대한 더 구체적인 진술은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북한 어선은 표류하다 지난달 30일 오후 해군의 대잠초계기인 P-3C에 포착된 뒤 해군 초계함에 예인됐다. 이어 31일 오후 동해 북방한계선(NLL) 선상에서 북한에 인계됐다.

지난 3일 울릉도 인근 해상에서 표류하다 해군에 발견됐던 북한 선박이 울릉도 저동항에 예인돼 있다. 이 어선은 길이 14m, 폭 3.2m, 높이 5m의 15t급 철선으로, 발견 당시 선원은 없었다. [사진 경북일보]

 지난 3일 오전엔 해군 함정이 울릉도 북동쪽 40마일 NLL 이남 지역에서 해류에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어선을 발견했다. 군 관계자는 “발견 당시 선원들은 없었고, 해경에 인도한 뒤 울릉도 저동항으로 옮겨 놨다”며 “조사 결과 대공 용의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조업을 하다 선박이 고장을 일으키자 선원들은 다른 배로 옮겨 탔거나 표류 도중 사망했을 수도 있다”며 “통상 선원들이 없을 경우 선박은 돌려주지 않는 관례에 따라 어떻게 처리할지 관계 부처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철 북한 어선의 잇따른 표류 사태는 이례적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통상 겨울엔 조업을 축소해 왔는데 최근 동해안에선 조업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과거 북한의 겨울철 조업 행태와는 다른 이유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수산업 챙기기’로 보고 있다. 이 당국자는 “지난해 여름 이후 김정은이 수산업을 강조하면서 어민들의 조업 활동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그럼에도 북한 선박들은 워낙 노후화돼 있어 무리한 조업 속에 고장이 겹치며 표류 사태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처형(지난달 12일) 직후 동해안의 ‘8월 25일 수산사업소’를 방문한 데 이어 지난달 26일엔 국가 수립 이후 처음으로 군의 수산부문 열성자 회의까지 열어 수산물 생산 확대를 독려했다. 지난 1일 올해의 정책 방향을 밝히는 신년사에서도 수산업을 강조했다. 국방부 당국자는 “북한은 1990년대 후반 식량난으로 주민들이 풀을 뜯어 먹으며 생활하자 풀을 가축들에게 먹이고 사람이 가축을 먹으면 된다는 ‘풀과 고기를 바꾸자’는 구호를 만들었다”며 “최근 수산물 강조도 식량난 해결을 위해 어획량을 확대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군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북한 함정들이 여러 척 침몰하는 등 북한 함정과 어선들의 노후화가 심각하다”며 “선박이 제대로 운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정은의 지시를 무리하게 이행하려다 보면 해상 사고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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