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의 윤리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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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자 탄강 2524년의 추기 석전을 맞아 우리 나라 유교의 총본산 성균관은 「윤리선언」을 발표했다.
더 말할 나위 없이 한국의 전통 사회를 지배하고 규제해 왔던 것은 유교의 윤리였다. 사회의 근대화에 따라 시민들의 일상 생활의 전개가 크게 변화하고 다양화했다고는 하더라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한국은 유교 사회적인 특색으로 하여 다른 나라와 구별된다. 원래 유교는 인륜을 초월한 자연의 대도를 설파하는 노장에 대비하여 본질적으로 인륜주의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그 특색이다. 또 한편 유교는 겸애의 설교와 천에의 신앙으로써 종교적인데로 기울어진 묵가에 대비하면 보다 뚜렷한 윤리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으며 또 법가의 법치주의에 대비해서는 덕치주의적 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리고 기독교나 불교에 대비해서도 종교의 세계가 아니라 인륜 일상의 도와 거기에 기초하는 수기치인의 대법을 가르침을 그 특색으로 하고 있다.
요컨대 유교는 이승에 있어서의 사람의 사람된 도리를 가르치는 윤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러한 유교를 치국의 근본원리로 삼았던 한국 사회는 말의 뛰어난 의미에 있어 윤리적·도덕적 사회였다고 할 수 있었다. 일찌기 이 나라를 가리켜 「동방예의지국」이라 일컬었던 것도 그러한 근거에서 나온 말이었다. 다만 이처럼 우리 나라의 전통 사회를 지배한 유교의 인륜·도덕은 역사적으로 볼 때엔 본질적으로 왕조 사회의 위계질서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를 규제한 것이었다는 제약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고 보면 서구사상의 도입과 더불어 시작된 근대화의 운동이 유교 비판을 낳고 유교의 퇴조를 결과했던 것도 자유·평등·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역사의 필연이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비판과 유교의 거세를 몰고 온 근대화가 비단 유교의 윤리만이 아니라 윤리일반, 또 유교의 도덕뿐 아니라 도덕일반의 부인 내지는 타락을 가져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통 사회의 전반적인 인간관계를 규제한 유교의 윤리가 물러선 자리에 그에 대체할 새로운 보편적인 윤리가 확립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윤리일반의 공백상태가 생겨난 것이다.
이번 성균관이 발표한 「윤리선언」은 바로 이 같은 윤리 일반의 공백이라는 위기 의식에서 나온 것이며 그와 같은 위기의식의 표백이라 볼 수 있다. 「선언」의 서두와 전문면에 인간의 존엄성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공감이 간다. 애초에 인간을 위해서 인간이 만든, 인간의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고 인간을 위협하는 인간의 질곡으로 화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는 이미 현대문명의 가장 큰 역리로서 지적된지 오래다. 그리고 이같이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대문명의 위기는 비단 공산주의 체제만이 아니라 고도성장을 추구하는 모든 산업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현대문명이 안고 있는 이 같은 병폐가 과연 유림들의 「윤리선언」의 발표만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순한 「선언」을 넘어서 현대생활의 문제들을 더욱 깊이 성찰해서 참으로 현대인의 심금에 호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새 윤리요강이 아쉬운 것이다. 거기에는 물론 유림들 스스로의 체질개선이 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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