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독감주사보다 중요한 손 씻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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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독감을 ‘독한 감기’의 줄임말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독감은 일반 감기와는 원인 바이러스 자체가 전혀 다른 급성 호흡기 감염성 질환이다. 일반 감기에 비해 고열과 몸살 등 증상이 심하고 전파력도 강해 주기적으로 엄청난 대유행을 일으키기도 한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유행은 스페인 독감으로 1918년 당시 전 세계적으로 2500만명이 희생됐다. 이는 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3배에 이르는 숫자며 일제치하 한반도에서만도 14만명이 사망했다.

간염이나 폐렴 예방 주사와는 달리 독감예방주사는 매년 겨울이 오기 전에 반복해서 맞아야 한다. 그 이유는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의 ‘변신능력’(항원변이) 때문이다.

유행성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항원형에 따라 A·B·C 세 가지 형으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A형이 가장 항원변이를 자주 일으키며 범세계적인 대유행을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 중 90%를 차지한다. 항원변이란 바이러스가 생존을 위해 조금씩 체질을 바꾸는 일종의 진화 과정이다. 이렇게 바이러스의 바뀐 체질 때문에 작년에 맞은 독감예방주사가 올해는 쓸모 없어 지는 것이다. 홍콩 독감, 러시아 독감, 스페인 독감 등으로 부르는 이유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항원변이가 처음으로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기 때문이다.

매년 여름이 지나면 그 해 겨울에 유행이 예상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항원형에 대한 예방주사를 결정해 9~11월 사이에 맞게 되는 것이 바로 독감예방주사다. 독감예방주사는 모두 맞아야 하는 것은 아니고 독감에 걸렸을 때 위험도가 높은 계층에 한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어린아이나 65세 이상의 노인, 그리고 심장, 폐, 콩팥 등의 만성적인 질병을 가진 환자들, 당뇨병같이 만성적인 대사성 질환 환자들, 면역 억제 상태에 있는 환자들, 양로원이나 만성질환자를 수용하는 시설거주자, 환자와의 접촉이 많은 의료진들이 독감예방주사를 꼭 맞아야 하는 대상들이다. 독감주사를 맞았는데도 감기에 걸렸다고 병원에서 따지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독감주사는 그저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줄 뿐이고 100여 가지가 넘는 일반 감기 바이러스는 예방하지 못한다. 따라서, 독감을 포함한 감기에 걸리지 않는 요령은 주변에 돌아다니는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습관에 익숙해 지는 것이다.

일단 감기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대중시설이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부득이하게 외출한 후나 사람이 많은 곳을 방문한 후에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특히 여러 사람이 만지는 공중화장실의 수도꼭지나 사무실 문의 손잡이, 엘리베이터 버튼 등은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이다. 평소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코나 눈 같은 곳을 만지작거리는 습관은 손에 뭍은 바이러스를 자신의 몸속으로 불러들이는 최악의 습관이다. 그러니 겨울철 유독 감기에 자주 걸려 억울한 분이라면 손 습관부터 확인해야 한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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