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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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은 15일 하오 1시를 기해 「크메르」영토에 대한 폭격을 중지함으로써 10여년간 끌어온 월남·라오스·크메르 등 인도차이나 3개국 전쟁 개입에 정식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은 그 동안 4만6천명의 전사자와 30만명의 부상자를 냈고, 1천2백억 달러의 전비를 지출했으며 7백40만t의 폭탄을 「인도차이나」반도의 「정글」과 도시에 퍼부었다. 지난 8년 동안에 투하된 폭탄량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기가 떨어뜨린 양의 3배, 한국전에 사용한 폭탄량의 10배가되며, 「크메르」에서 만도 24만t이라는 막대한 양의 폭탄이 적진을 향해 쏟아져 들어갔다.
8·15 단폭을 기점으로 해서 볼 때 10여년의 지루하고 몸서리쳐지는 「인도차이나」전쟁의 평가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
한마디로 「인도차이나」사태는 10년 전의 거의 원점으로 되돌아갔을 뿐 아직은 뚜렷한 승자도 패자도 없다. 단 한가지 명백한 것은 미국이 「인도차이나」전쟁 개입으로 전세계로부터 빗발치는 비난을 받았으며 1, 2차 세계대전에서처럼 전승국으로서의 긍지를 가질 수 없었다.
외교면에서 볼 때 같은 2차대전의 전승국인 소련 및 중공과의 화해의 시기가 그만큼 지연되었고 우방인 유럽 제국과도 미묘한 관계에 빠지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은 월남전에서의 실패로 「세계경찰」로서의 임무를 포기하고「닉슨·독트린」을 발표, 아시아에서조차 자신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게 된 것이다.
어쨌든 월남에서는 지난 1월 28일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3월 29일 휴전협정에 따라 월남에 주둔했던 미군이 완전히 철수했다. 또한 「라오스」에서도 2월 21일 평화협정이 조인되고 4월 18일 미군기의 「라오스」영내 공중폭격은 완전히 중지됐다.
그러나 월남에서는 휴전협정에 규정된 민족화해평의회조차 구성되지 않은 채 정치적인 타결엔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라오스」에서도 평화협정은 조인되었지만 임시 민족연합정부는 여전히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상 월남·「라오스」등 「인도차이나」 2개국이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불안한 휴전으로 현상유지를 하고있는 이때 「크메르」에는 아무런 정치적 타협의 보장조차 없이 미국의 지원이 끊어지고 말았다.
우리는 월맹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미국이 월맹심장부를 강타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사실을 잘 알고있다. 「라오스」반란군 「파테트·라오」에 치명적인 폭격을 가한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크메르」의 경우 반정부세력이 수도 「프놈펜」의 문턱까지 밀어닥치고 있는 가운데 의회의 압력으로 미 공군지원이 중단된 사실은 「크메르」의 앞날을 지극히 우려케 하는 것이다.
현 「론·놀」정부의 능력으로서는 「크메르」사태를 도저히 수습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론·놀」정부내의 일부에서는 북경에 망명해있는 「시아누크」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새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대두하고 있는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정부조차도 「시아누크」를 복귀시켜 과도내각을 수립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는 외신보도까지 있다.
「시아누크」자신은 『공산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크메르」의 독립과 중립을 위해 싸우고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중립외교의 곡예사」로서 지금 북경에 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아누크」가 복귀하여 또다시 능숙한 곡예사 노릇으로 「크메르」가 공산화한다면 월남·라오스 평화도 당장 크게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국은 인식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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