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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파업 최대 패자는 노조·고용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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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철도파업은 만기친람(萬機親覽)으로 해결됐다. 청와대만 제 역할을 했지, 정부는 무기력했다. 여당과 야당은 막판 돌파구를 마련하며 체면을 세웠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했다. 고용노동부와 철도노조는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각계 전문가들이 본 철도파업 처리 과정에 대한 평가다. 본지는 지난해 12월 31일 고용노동 분야와 정치 전문가 14명을 대상으로 긴급 패널조사를 했다.

 이들은 대체로 박근혜 대통령이 진두지휘한 철도파업 해결 과정과 그 과실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원칙을 확실하게 지키고, 공공부문 개혁의 명분을 얻었다”는 것이다. 장석춘 전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당성이 결여된 것은 원칙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천명했다”고 평가했다. 철도파업으로 국가정보원 개혁과 같은 정쟁의 대상이었던 쟁점을 잠재우는 효과까지 거뒀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국정을 일일이 챙기면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우려도 있었다.

 새누리당도 철도파업 해결에 따른 수혜자로 꼽혔다. 막판에 모처럼 중재자의 역할을 해서다. 하지만 “당론이 아닌 개인플레이”(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 박호환 아주대 교수,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 “노사문제에 정치 개입 선례”(김동원 고려대 교수,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라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집권당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고, 이번 건을 중요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민주당도 비교적 호평을 받았다. 나름대로 정치력을 발휘해 자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사태를 처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업을 선동해 수권정당으로서의 이미지가 훼손됐다”(장석춘 전 한국노총 위원장, 이지만 연세대 교수), “당론도 없이 민주노총에 끌려다녔다”(박호환, 조준모, 어수봉, 오종쇄 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는 지적을 받았다.

 나머지 정당은 모두 “존재감이 없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안철수 신당에 대해서는 “신당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회였지만 회피전략을 쓰면서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줬다”는 분석이 많았다. 김수한 전 의장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며 평가보류 의견을 냈다.

 고용 부는 최악의 평가서를 받아 들었다. 모든 패널이 “주무 부처로서 국민에게 무능력을 그대로 노출했다. 정치권에 주도권을 뺏긴 가장 큰 원인이 고용부”라는 비판성 평가를 했다. 이 전 장관은 “노사관계 주무 부처로서 사안의 심각성과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했다. 정부 3.0을 구현해야 할 시기에 외환위기 이전 1.0버전의 행정을 보여줬다. 와해 상태로 보인다”는 혹평을 했다. ‘보통’이라는 평가를 내린 전문가는 “그나마 불법파업이라는 원칙은 천명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

 국토교통부도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민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지나치게 강조해 ‘민영화=악’이라는 프레임에 정부를 가뒀다. 향후 공기업 개혁의 옵션을 스스로 내던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준비가 전혀 없었고, 국민도 설득하지 못했다”(이동응 전무, 박호환 교수, 이 전 장관, 오종쇄 전 위원장), “고용부 영역까지 침범하며 오버했다”(장석춘 전 위원장, 조준모 교수, 이지만 교수)고 꼬집기도 했다. 하지만 면허를 예정대로 발급하는 것과 같은 원칙에 입각한 행보는 좋은 인상을 줬다.

 코레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고질적인 이면합의를 하지 않고 철도노조의 무리한 행동에 이정표를 세웠다는 평이 있는가 하면 대응 과정에서 무기력하고, 설득의 기술이 없어 장기화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노동계는 상처만 입었다 . 전문가들은 "민주노총은 불법파업을 조장하고 철도노조를 보호하지 못했다”고 했다. 조직 내부동력을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한국노총은 대부분의 패널로부터 “막판에 민주노총의 투쟁에 편승하려다 파업이 철회되면서 길을 잃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양 노총이 노동운동에 대한 기본적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은 성과”(박상병 정치평론가)라는 분석이 있었다.

 철도노조는 혹평을 받았다. 대안 없이 무작정 파업을 벌여 단순 참가자까지 피해를 보게 했다는 것이다. 오종쇄 전 위원장은 “민영화는 나도 반대한다. 그러나 어떻게 경영효율화를 하고, 고객편의성을 높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한다. 자기반성이 없으면 앞으로 노조로서의 역할이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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