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75% 부유세' 기업에 물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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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프랑스에서 고소득자에게 75%의 세금을 물리는 ‘부유세’ 신설이 끝내 관철됐다. 하지만 숱한 논란과 우여곡절을 거치며 당초 계획보다 크게 축소된 형태가 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헌법재판소는 29일(현지시간) 이 세금과 관련한 법안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곧 법 시행을 선포할 예정이다.

 이날 헌법재판소를 통과한 법안은 기업체 등 법인이 피고용자에게 100만 유로(약 14억5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지급하면 100만 유로 초과 분에 대해 50%의 특별세를 내도록 돼 있다. 이 특별세에 사회보장 분담금 등을 더하면 100만 유로 초과 소득에는 사실상 75% 안팎의 세금이 부과되는 효과가 난다. 하지만 이 특별세가 개별 법인 연 매출의 5%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상한선 규정을 뒀다.

 이 법안은 2014년 말까지 2년간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올해 소득에 대해서도 소급해 세금이 부과된다. 부유세 도입은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는 2012년 중반에 치러진 선거 때 “부자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겠다”며 75%의 소득세 부과를 약속했다. 당초 법안에는 한 해 100만 유로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고소득자에게 100만 유로 초과 소득에 대해 75%의 세금을 물리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집권당인 사회당의 압도적 지지로 의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프랑스 최고 행정재판소 역할을 하는 국참사원(콩세이데타)과 헌법재판소에서 제동이 걸렸다. 국참사원은 부부의 합산 소득을 세금 부과 기준으로 삼는 일반 소득세와 다른 징세 방식은 형평에 어긋난다고 판결했다. 헌법재판소는 소득의 3분의 2 이상을 징수하는 것은 재산 몰수와 같은 처분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 뒤 올랑드 정부는 특별세율을 50%로 낮추고 기업체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수정 법안을 만들었다.

 프랑스에서 한 해 100만 유로 이상의 연봉을 받는 이는 2000∼3000명 수준이다. 주로 기업의 고위 임원과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수 증가 효과는 한 해 수억 유로(수천억원)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제스처’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이 부유세에 대한 부자들의 반발도 심했다. 프랑스에서 국민배우 대접을 받아온 제라르 드파르디외는 올해 초에 벨기에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는 벨기에 정부가 시민권을 내주지 않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도움으로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프로 축구선수들도 계획을 취소하지 않으면 경기를 보이콧하고 국적을 이웃 나라로 옮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합 취소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다. 프랑스 부자들이 이웃 나라로 거주지를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레드카펫을 깔아놓고 환영하겠다”고 발언해 외교적 마찰을 빚기도 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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