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신고·이혼 신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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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최근 「범여성 가족법개정촉진회」란 여성단체들의 모임에서 발표한 가족법개정 10개 항목을 보면 「호주제 폐지」「재산상속에 있어서의 남녀 평등」등과 함께 「협의 이혼제도의 합리화」가 한 항목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혼하고자하는 남편·아내가 함께 구청에 가서 「신고」만 하면 그 자리에서 이혼이 되는 현행 이혼제도는 너무 간단해서 강요나 사기에 의해 여성 쪽이 피해 받을 위헌이 크므로 이혼에는 반드시 가정법원이 개입하도록 법을 고치라는 주장이다.
1963년 10월 호적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쌍방이 구청에 같이 갈 필요조차 없었다. 어느 한쪽이든 신고만 하면 그것으로 이혼이 됐다.
법을 고치거나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63년 협의 이혼제도를 만들 때 그것은 이상적인 제도라고 생각되었었다. 혼인신고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일 그 당시에 『혼인신고는 혼인 당사자 쌍방이 호적공무원 앞에 직접 출두하여 그 본인임을 확인한 후에야 접수된다』라고 규정하기를 고집하였다면 그 사람을 미친 사람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누가 혼인도 안하고 혼인하였다고 신고를 할 것인가. 또한 서울 사는 사람의 본적지가 제주도라면 신혼부부가 신고하러 제주도까지 가란 말인가 하고 반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협의이혼제도」와 마찬가지로 「혼인 신고」를 둘러싼 부작용이 여기저기서 일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법을 만들던 10년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들이다.
한 남자가 어떤 여자에게 몇 해를 두고 구혼을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남자는 화가 나선 여자의 도장을 파 가지고 구청에 가서 결혼신고를 해버렸다. 여자는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이를 발견, 얼굴이 하얘져서 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는 「혼인무효소송」을 하라고 한다. 소송을 하면 처녀로 돌아갈 수 있다니 우선 안심이지만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보통 일이 아니다.
이와 반대로 여자 쪽에서 임시적인 관계를 앙갚음하기 위해 혼인신고를 해버리는 일도 있다. 남자는 멋도 모르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후 신고를 하러갔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또 요즘에는 서독에 가는 기술자, 광부 등이 가족수당을 받기 위해 아는 여자를 슬쩍 처로 올려놓고 가버리는 일도 많이 있다.
누구든지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만 써내면 되는 현행 호적법은 이렇게 악용될 수가 있는 것이다. 1963년 가정법원이 창설될 때 나는 「혼인신고」의 확인제도를 구상해 보았었다. 혼인식의 주례자증명(주례자는 법원의 허가를 맡은 자에 한한다) 이나 변호사의 증명이 첨부되면 당사자들이 본적지에 출두 안 해도 되는 편법을 쓰자는 구상이다.
가족법을 고쳐서 남녀 평등을 하는 것은 물론 당연한 일이나 우선 손쉽게 고칠 수 있는 호적법부터 고쳐서 인생 대사인 혼인이 나쁜 목적으로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됐으면 좋겠다. 【권순영(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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