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돌 맞은 서울∼평양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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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7·4남북공동성명으로 분단의 민족사에 새장을 연지 1년. 남북관계는 인도와 정치, 단계론과 일괄론이 맞선 채 한해를 보냈다. 그동안 남과 북은 대결 속에 대화를 계속하며 안으로는 체제정비를 단행하고 밖으로는 격변하는 국제무대에 능동적으로 뛰어들어 도전과 적응을 부단히 계속해 왔다.

<기본입장서 거리 멀어>
7·4성명의 거창한 약속에도 남북관계가 대체로 부진한 것은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서로의 기본입장의 차이 때문이었다.
남이 인도나 문화 등 기초적이고 해결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하나 풀어가자는 상향식 단계론에 서 있다면, 북은 정치·군사 등 고차척인 문제부터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하향식 일괄론이다.
7·4성명 후 1년 동안 남북은 조절위원장회의 3번과 조절위원회의 3번, 남북적십자 회담 6번, 군사정전회의 8번을 치렀다.
조절위원장 회의는 판문점과 평양·서울에서 차례로 열려 조절위회의를 위한 절차문제를 해결하고 지난해 11월30일로 일단 끝났다.
그후 조절위는 두 차례의 서울회담과 한 차례의 평양회담을 열었으나 상당한 의견차이를 드러낸 채 팽팽히 맞서 왔다.
서울측은 경제·사회 분야를 먼저 구성하여 경제인의 교류, 물자의 교류, 일부 경제생활부문의 합동개발과 합동작업, 예술단·가무단의 교류 공연, 체육교류, 학술단체·사회단체 기자의 상호 교류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했다.
이 장의 문제토의가 진전되어 신뢰의 바탕이 마련된 뒤 정치·군사문제의 토의에 들어가자는 것이 서울측 주장이다.

<한적, 구체적 방안 제시>
그러나 평양측은 남북문제의 관건은 군사적인 대치상태의 해소에 있다고 고집하면서 정치·군사·외교·경제·문화의 5대 분과위를 일괄 구성하여 정치협상회의, 평화협정 체결과 외군철수, 군축문제를 먼저 다루자고 주장, 진전을 못보고 있다.
적십자 회담도 부진한 상태.
한적은 의순에 따라 의제1항 『남북으로 흩어진 가족들과 친척들의 생사와 주소를 알아내며 알리는 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과 서식까지 제시했다.

<간첩남파 등 약속부도>
그러나 북적은 실질적인 토의에 들어가기 전에 남한의 법률적·사회적인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반공단체 해체,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의 폐기를 요구하고, 상대방의 리·동마다 적십자 요해해설 인원을 파견하는 문제를 먼저 다루자고 제의했다.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나 비서장 회의도 회담분위기나 토의내용에 있어서 조금도 다름이 없다. 만나면 서로 상대방이 침략적이고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고 입씨름이다.
공동성명은 무력도발과 군사적인 충돌을 않기로 규정했으나 북한은 올해 들어 휴전선에서 두 차례의 총격 사건을 일으켰고 간첩을 계속 남파하여 그중 6건이 검거, 발표됐다.
조절위원장 제2차 회의에서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나 방송을 않기로 합의하고도 북한측은 지난달 10일 휴전선 4개 지역에서 남한을 비난하는 대남 심리전 방송을 재개했었고 그들의 방송망을 통해 우리측을 비방하는 방송을 끊임없이 계속해 왔다.
특히 대한민국이 이미 가입된 국제기구나 외교관계가 인접된 국가에 대해 대한민국을 중상비방하면서 침투를 시도하여 대외적으로 「두 개의 한국」을 기정 사실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적십자회담 측면지원>
이같은 사실은 모두 7·4성명정신에 어긋날 뿐 아니라 남북관계가 고착돼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해서 남북공동성명의 의의나 가치가 절하된다고는 할 수 없다. 상호 부정의 논리 속에서 4반세기를 일관해 온 남북이 7·4성명을 계기로 비로소 긍정적인 자세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그 직전까지도 양측은 팽팽한 정치·군사적인 대결 속에서 전쟁 일보전의 태세를 유지하고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대남방송에 시정촉구>
적십자회담은 열려 있지만 양측 통치권자의 의사를 공식적으로 대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스스로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공동성명의 직접적 산물인 조절위는 적십자회담이 난국에 처할 때마다 측면에서 이를 도와 타개해 주었다.
휴전선 도발이나 간첩침투, 대남방송이 있을 때마다 조절위가 개입, 곧 시정할 수 있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군사정전위원회에 대한 간접 지원이 됐다.

<외교무대서의 대결로>
7·4성명은 남북대결의 주전장을 휴전선으로부터 외교무대로 옮겨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상 한반도에서의 무력의 위험을 그만큼 감소시키고 긴장을 완화했다는 위로로 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년 동안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은 별로 없었다해도 변화는 분명히 있었다. 더 많은 변화를 일으켜 이것을 민족사적 차원에서 발전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공동의 과제일 것 같다. <구종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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