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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관리국서 마련한 전세 명연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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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화재관리국은 우리 나라에 있는 옛날의 좋은 벼루를 점검하기 위한 방안으로 명연전을 마련했다. 16일 창덕궁에서 개막될 이 특별전에는 개인소장품 2백60점과 창덕궁 소장 40점을 합하여 모두 3백점을 전시하는데 전시기간은 7월16일까지 1개월간.
이들 벼루는 이조 말 이전의 한국산 벼루를 비롯하여 중국 것과 더러는 일본 것도 포함하고 있는데 김원룡·최순우·임창순·유치웅·김호연 제씨가 전국에서 출품된 것 가운데서 전시품을 선별했으며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는 최초로 명연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셈이다.
관리국이 이같이 명연의 기획전을 갖게 된 것은 숱한 벼루가 각 가정에 흩어져 있는 채 그중 소중한 것을 가려내기 어려운데서 착안된 것. 그동안 72년 초 명동화랑의 벼루전과 금년초 서울대의 서사애연전에 적잖은 물건들이 나오는데 자극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 벼루를 전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도 없으려니와 이렇다할 수집가도 없다. 그래서 엄청난 평가가 설왕설래되기도 하지만 막상 올바른 진가가 판별되지 않고 있다. 또 명연에는 으례 역대 애장가의 이른바 연보가 따르기 마련임에도 중년의 소홀로 말미암아 소중한 그 벼루의 역사가 거의 흐려져 있다.
벼루는 선비의 문방구 가운데 가장 기품을 보이는 물건이다. 신식「잉크」가 보급되기 이전에는 묵서가 필기의 유일한 방편이었었으니 만큼 모든 가정에서 벼루는 중요한 필수품이었다. 그 중에도 왕가나 글이 높은 선비들은 보다 좋은 벼루를 쓰기 마련이요, 그런 점에서 좋은 유품을 물려받아 쓰거나 당대 최고의 공예품을 구해 썼을 것이 당연하다. 붓과 먹이 한갓 소모품에 불과하나 벼루만은 연륜을 쌓을수록 소중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벼루의 시원은 중국이다. 한 대부터 많은 벼루의 실물이 남아있다.
한대의 석연은 둥글거나 세 발 달린 것이 있고 도룽용 흑사자를 부각했다.
육조를 거쳐 진대가 되면 재료가 도자로 바뀌어 청자삼족원형 연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당대에는 그 발에 수각도 하고 원형만이 아니라 풍자연이 출현되며 8, 9세기께부터 안휘성의 흡주석과 광동성의 단계석이 벼룻들로 유행하게 된다.
송대에는 당 석연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 조각이 다채로와지고 조하의 녹석 연이며 앙금을 구워만든 등니 연 등도 나타난다. 명·청대에 내려오면 더욱 화려·복잡해지며 명문을 새겨 넣어 그 유래를 자랑하는 기풍도 생겼다.
우리 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도연의 예가 남아있으므로 중국 육조 말 내지 당대의 전통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는 풍자형의 석연과 도연이 주류였던 모양이나 거문고와 같은 특수 형태도 없지 않다. 이조 시대에는 우리 나라에서 나는 검은 점판암을 사용한 것이 대부분이나 중국의 명석으로 만든 벼루를 수입 해다 쓴 말하자면 고급 전세품도 많이 유존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도 중국의 법연·도연·단계연·흡주연 등이 수십점이나 출품되어 그들의 화려하고 섬세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지만 보다 이조공예의 소박한 감각이 담겨진 이조 연의 진가를 다시 평가해 보는 기회라는 점도 매우 요긴한 일이다.
이조시대 연석의 주요산지로는 안동·남포·해주·장연·위원·경성 등지가 지목되고 있으며 그중 대부분은 일제 초까지 해동연의 명산지로 제작돼왔다.
이번 특별전을 위하여 창덕궁 측에서는 개인소장의 명연을 두루 수소문하여 전국을 찾아 다녔지만 역시 묻혀 있는 것을 모두 발굴해내지는 못했으며 유래가 분명한 것으로는 남유용의 정조하사품, 전 정송강 유품, 김흥근 유품, 정조어필 이율곡 유품, 김완당 유품 등이 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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