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1주일』(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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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가 「모스크바」거리를 거닐면서 특히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길에 걸어다니는 많은 사람들(대부분 중년남자들)이 사복에다 훈장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서구의 어느 사회에서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처음 한 두사람 달고 다니는 것을 봤을 때는 『이 사회에는 아직도 이런 유치한 일면이 있구나』하고 가볍게 여겼었는데 정작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마주치다보니까 나름대로 그 의미를 딴 각도에서 음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의 진풍경 사람마다 훈장>
물론 그들은 군인이나 관리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자유세계의 어느 곳이건 좋다. 어떤 사람이 공식석상이 아닌 자리에 훈장을 달고 나타났거나 또는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모든 사람들은 그를 갓 군복을 벗은 제대군인쯤으로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가 지긋한 중년의 사나이가 훈장을 주렁주렁달고 다닐 때 사람들은 그를 과대망상병의 환자거나 『좀 모자라는 사람』정도로 볼 것이다.
그러나 소련이란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돌이켜 생각해 봤을 때 그 의미는 전연 다른 것 같았다.

<건강 해친다고 검 생산 중지>
모든 것이 국가가 중심인 그곳에서는 그 훈장이 국가를 위해 얼마만큼 봉사했다는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국가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신은 이만큼 일을 했다고 과시하고 또 국민은 그것을 약간의 「경의」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해석에 불과한 것이지 그 진의는 알 길이 없었다.
또 한가지 「모스크바」의 여러 관광명소들을 돌아다닐 때마다 인상적인 일이 있었다. 그것은 12, 13세의 소년들이 외국관광객처럼 보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추잉검! 추잉검』하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해방직후나 6·25 때 잠시 볼 수 있었던 풍경이 아니었던가.
이 꼬마들은 관광객이 가는 곳이면 어디나 몰려들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소련에서는 현재 「검」을 생산하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비싸지 않은 「아이스·크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산하던 이 「검」을 건강상 나쁘고, 또 생활자체에 미치는 영향이 좋지 않다하여 생산을 중지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아이들은 잠깐동안이나마 습성화돼버린 「검」을 갑자기 구경하지 못하게 되니까 더 씹고싶어 미치고 환장하는 듯 했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그동안 소련사회에서 막혔던 무엇이 터지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전에 얘기한 「달러」를 바꾸려는 여인들의 예뻐지고 싶은 염원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었다.
「모스크바」의 거리에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행상이 많았다. 위에는 포장을 치고 바퀴를 달아 끌고 다니면서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모든 것이 「매스」인 소련사회에서 이런 조그만 행상의 모습은 특이한 것으로 「클로스업」되었다. 이 「아이스·크림」은 비싼 것은 30「코펙스」(1백60원)나 했고 싸구려는 5∼7「코펙스」정도였다.
그들은 「모스크바」의 「아이스·크림」이 세계 제일이라고 자랑했다. 과연 맛이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지방에서 어떻게 「아이스·크림」이 발달했나를 생각해보면 「아이러니컬」한 일이기도 했다. 물론 그 「아이스·크림」행상마저 국가가 경영하는 것인지 어떤지는 유감스럽게도 확인해보지 못했다.

<여자머리는 땋거나 쪽져>
처음에 내가「모스크바」의 인상이 검소한 것 같다고 말한 것은 그들에게서 화려한 색깔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남자건 여자건 그들의 옷은 검은색·짙은 갈색·회색이 대부분이었다. 여성들의 「헤어·스타일」도 틀어 올리거나 「파머넌트」를 한 것이 아니고 땋거나 쪽을 찐 수수한 것이었다. 거리에서 이따금 볼 수 있는 「미니·스커트」차림은 관광객이라 단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건축물은 대부분 붉은 벽돌로 되었고 장식부분은 화려한 도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또 큰 건물의 지붕꼭대기에는 별들이 유난히 많이 달려있었는데 그것이 어떤 건축양식에서 따온 것인지, 또는 그밖에 딴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가도의 반정두가 인도로>
「상징」이란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우리는 흔히 붉은 색깔을 공산주의의 상징으로 생각해온다. 그러나 거기서는 붉은 색깔이 아름답다는 것, 훌륭하다는 것, 정의를 뜻하는 것으로만 쓰여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러시아」혁명이전에부터 붉은 색깔의 개념은 아름다움으로 승화된 「슬라브」특유의 표현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붉은 광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피와 혁명의 광장」이 아니라 「아름다운광장」이란 얘기였다.
우리가 살고있는 자유진영의 길은 차도를 위주로 하고 있는데 「모스크바」의 길은 좀 달라 보였다. 인도가 중심이 되고 있었다. 길이 어마어마하게 넓은데도 그 길의 반 정도를 인도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육교 볼 수 없고 지하도만>
이러한 나라에서 어떻게 사람을 위주로 길을 만들었는지 이상할 정도였다. 길에 자동차가 적어서 그런가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새로 만든 큰 길이 인도가 넓은데 비해 구도들은 오히려 인도가 좁았기 때문이다.
길이 워낙 넓어 교통순경은 길 가운데 서있지를 않았다. 네거리 한 모퉁이에 3∼4m 높이의 망루 같은 것이 있어서 거기에 앉아 있었다. 사방이 유리로 돼있어 멀리서 차오는 것까지 내려보며 신호등을 조작하는 모양이었다.
넓은 길에는 건널목이 없었고 사람들은 모두 지하도로 건너다녔다. 거리에 육교란 것이 없는걸 보니 지하도가 잘 발달된 듯 했다. 보행자들은 넓은 광장도 그대로 지나다닐 수 없고 지하도를 이용해야했다. 「크렘린」궁 앞의 「붉은 광장」만은 예외인 듯 관차 이외에는 사람들만이 다니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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