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성파행증·비루·맥립종·우종 … 암호 같은 약품 용어 쉽게 바꾸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다른 약물의 흡수, 대사 또는 신배설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약동학적 변화로 영향받는 약물의 용량 조정 또는 투여 중지가 필요하다’.

 약학과 전공 논문의 내용이 아니다. 위산과다 및 속쓰림에 복용하는 위장약의 ‘사용설명서’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주의사항에 적은 것이지만 전문 지식이 없는 일반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일반의약품의 사용설명서에 쓰이는 전문용어를 쉬운 용어로 바꾸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의약품 표시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 고시했다고 26일 밝혔다. 용어뿐 아니라 불필요한 전문적인 내용은 빼고 일반 복용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내용으로만 간략하게 요약하도록 권장할 방침이다.

 식약처 이동희 의약품관리총괄과장은 “지난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 13품목에 대해 용어를 쉽게 요약해서 쓰도록 권고했다”며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일반의약품 전반으로 대상을 확대하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용법·용량’의 경우 복용자가 알 필요 없는 1회 복용량의 무게(g 또는 mg)까지 표시하고 있다. 이번 개정 고시는 알약은 몇 정, 포약은 몇 포를 먹으면 되는지만 표시하도록 했다.

 전문용어가 가장 남용되는 부분은 사용설명서의 ‘주의사항’ 부분이다. 복용자를 대상으로 한 주의사항이지만 내용은 약을 조제하는 약사를 대상으로 한 듯 어려운 용어들로 가득하다. 개정 고시에 따르면 주의사항엔 4개 범주(▶경고 ▶복용해선 안 되는 경우 ▶ 복용 전 의사·약사와 상의해야 하는 경우 ▶복용을 중지하고 의사·약사와 상의해야 하는 경우)가 들어가며 전문용어는 거의 사용되지 않도록 한다.

 식약처는 이번 개정안을 활성화하기 위해 ‘아스피린’ ‘아세트아미노펜’ 등 국내에서 많이 사용되는 아홉 가지 성분에 대한 요약 기재 예시안을 의약품 제조사에 배포했다. 또 전문 의약용어 802개와 그것을 대체할 쉬운 용어를 정리해 따로 보냈다. 예를 들어 ‘우종’은 ‘사마귀’로, ‘족근골’은 ‘발목뼈’와 같은 식이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은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차원에서 용어를 쉽게 표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기존 포장을 갑자기 바꾸려면 비용 부담이 있는 만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서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