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소사이어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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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국에만 있는 술집에 「퍼블릭·바」(public bar)라는게 있다. 속칭은 「퍼브」(pub). 그 구조도 영국답게 묘하다.
어느 「퍼브」에나 「카운터」가 하나 있다. 그것을 경계로 하여 방이 둘로 나누어져 있다. 입구를 들어가면 왼쪽 문에는 「살롱」, 오른쪽 문에는 「바」라고 적혀 있다. 왼쪽은 신사용이며, 오른쪽은 노동자 계급용이다. 같은 술도 오른쪽과 왼쪽과는 값이 다소 틀리다.
굳이 막벌이 노동자가 신사용 「살롱」쪽에 들어가서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누구나 자기분수에 맞는 곳으로 찾아 들어간다.
그냥 17세기 때부터의 관습을 존중하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어울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선 말이 틀리다. 전 인구의 94%나 되는 노동자 계급의 「커크니」영어와 6%밖에 안되는 상류계급의 이른바 「킹즈」영어와는 발음부터가 틀리다. 계급의식을 안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계급을 느끼게 한다. 일상생활부터가 다르다. 노동자 계급은 저녁 6시쯤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중산계급 이상은 6시전에 아이들을 먼저 식사시키고 부부는 7시 이후에 손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게 보통이다. 「골프·클럽」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입회금의 다모에 따라 「클럽」의 격식이 결정된다. 영국에서 가장 격식이 높다는 「로열·블랙히스」의 입회금은 7만원 정도밖에 안된다. 그러나 지명인사의 추천인이 7명이나 있어야 한다.
영국에서처럼 VIP가 엄격하게 규정되는 곳도 드물다. 언젠가 「리처드·버튼」과 「리즈·테일러」가 「런던」공항에 내리자 항공회사측에서 귀빈실로 바로 들여보내려 했다. 그러자 공항당국자가 이를 제지했다. 그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영국도 신분사회로부터 기능사회, 역할사회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엄격한 계급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는 충분한 까닭이 있다.
아무리 「비틀즈」가 작위를 받고 「톨즈·로이스」를 타고 다녀도 또는 명문의 딸이 「고고·댄서」가 된다고 해도 영국의 「하이·소사이어티」가 지니고 있는 권위는 까딱도 없다.
그것은 영국에서는 상류사회란 단순히 돈이나 지위, 또는 권력의 소유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정말로 세련된 교양을 몸에 지닌 사람들의 「서클」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하이·소사이어티」에도 금이 가고 있는 듯 하다.
이번 「섹스·스캔들」에 관련된 「램턴」경은 BBC와의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스림을 받는 자와 다스리는 자의 도덕률이 다르다면 민주주의는 분열한다』고.
그러나 「하이·소사이어티」의 존재이유는 바로 다르다고 본데 있었던게 아닐까. 영국사회도 크게 탈바꿈되어 버린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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