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흥국사 괘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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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찰 법당에는 불가 특유의 각종 그림을 걸어 두고 장엄하게 꾸민다. 여러 부처와 여러 보살을 비롯하여 역가팔상·화엄회·제석천신장·지장·관음·칠성·존자·산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소재를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불법계 즉 만다라의 상황을 그린 것이며 그 그림을 흔히 정화 (탱화) 불정 (불탱)이라 일컫는다.
만다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괘불이다. 이는 당산회 같은 큰 법회를 가질 때 법당앞 마당에 단을 모으고 높다랗게 걸어 놓는 큰 탱화이다. 석가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 보살을 배치하고 혹은 여러 보살과 신중으로 하여금 더 감싸도록 그려 넣기도 한다. 곧 석가가 설법하던 영산회상의 광경이다.
이번 전시회의 중앙 「홀」에 걸린 한폭 탱화는 전남 여수 흥국사가 간수하고 있는 대폭의 괘불이다. 그 제작 연대가 확실하고 또 3백년 전의 것 (1693년) 임에도 보존 상태가 아주 좋은 편이다. 특히 필치가 세련된 화승의 작품인데다가 진채의 채색도 매우 선연하다. 그래서 이조 불고의 한 본보기로 선정, 출품한 것이다.
불화는 그 제작에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과 연대를 적어 놓는 게 상례. 이번 괘불의 녹화 질에 의하면 강희 32년 계유 4월에 영취산 흥국사에서 영산 회를 마치고서 마련한 것이라 했고 화승이 가선 천신 비구와 의천 비구임도 밝혀 놓았다.
그러나 현재 사찰에 남아 있는 불화는 몇 개를 제외하곤 건강 (1736년) 이후의 작품이며 거개가 이조의 아주 말기 것들이다. 이제까지 확인된 옛 탱화 중 유명한 것은 단원이 참여해 제작했다고 전하는 수원 용주사 후불 탱화 (1790년)와 국립 박물관 소장으로 있는 의균의 『석가여래 전법 윤도』 정도, 그런 점에서 보면 흥국사 괘불은 상당한 고서로서 대작의 일품이다.
이러한 불화의 내력을 소급하면 우리 나라 회화사의 첫 장을 장식한다. 신라나 고려에는 신필의 화승이 적잖았고 또 일본에는 고려 불화가 유존 돼 있는 것조차 없지 않다. 또 보통의 정화는 지본·견본이기 마련이나 대폭의 괘불은 의례 마포로 더덕더덕 배접 돼 있는데다가 간수하기가 어려워 얼마 안 되는 유존품 조차 상태가 아주 불량하다.
그러나 지금 국내에는 부석사 벽화와 수덕사 벽화 등 고려 시대의 불교회학 작품이 전할뿐 이조 전반기의 불화조차도 별로 확인되는게 없다. 그것은 임진왜란 때 숱한 불화가 건물과 더불어 소실됐고, 또 불가의 관례는 낡은 탱화를 소각하는 때문에 오랜 그림으로는 별로 남아 있는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나마의 정화들이 사찰로부터 시중에 대량 흘러나오고 있다. 유출 경의는 알 수 없으나 그중 적잖은 양이 해외로까지 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흥국사 괘불의 크기는 길이 5m7cm·폭 4m2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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