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일본 교과서] '역사왜곡 반대' 일본 시민단체 곤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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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 왜곡 교과서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단체들이 딜레마에 빠져 있다. 독도 문제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은 5일 '새역모' 교과서가 검정통과한 데 대해 일제히 반발했다. "문부과학성이 손을 대 일부 표현을 완화한 곳은 있지만 본질적인 변화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어린이와 교과서 네트 21' 등 14개 관련 단체들은 5일 기자회견을 열고 '새역모 불채택 전국 운동'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새역모 채택률 0%'를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올해는 과거와 상황이 달라 고민이다. 2001년 새역모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때는 한.일 시민단체들이 뭉쳐 긴밀하게 협력했다. '역사 왜곡 반대'라는 단일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한국 내 여론의 초점이 도쿄서적.오사카서적 등의 공민교과서에 실린 독도 표기에 쏠려 있는 데 대해 일본 시민단체들은 우려하고 있다. 자신들이 문제삼는 역사왜곡 부분은 한국 여론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내에서 왜곡 역사교과서뿐 아니라 공민교과서의 독도 관련 표기 문제를 집중 비판하게 되면 한.일 시민단체의 연대는 힘들어질 공산이 크다. 일본의 양심 있는 시민단체들이라고 해도 역사 왜곡문제에 독도 문제를 같이 끼워넣는 것은 부담스러워 한다. 조직 내 반발도 만만치 않다. 영토 문제와 역사 문제는 별개로 대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독도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면 일반 국민의 호응을 얻기 힘들다는 현실론도 있다.

2001년 새역모 교과서 채택을 0.039%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일반 시민들이 시민단체의 설득에 적극 호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과서를 채택하는 지자체 교육위원회에 대한 압박도 가능했다.

'어린이와 교과서 네트 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사무국장은 "한국 내 여론이 독도 문제에만 집중할 경우 일본 내에서 역풍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며 "그렇게 되면 '새역모' 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은 힘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결국 '새역모'교과서만 채택률을 높이는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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