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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공개된 「마크·트웨인」 최후의 유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톰·소여」의 모험』 『「허클베리·핀」의 모험』 등 많은 모험 소설을 남긴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 「마크·트웨인」 (본명은 「새뮤얼·랭혼·클레먼즈」·1835∼1910)의 최후 유고가 최근 미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의해 일반 공개되었다. 모두 4만 단어의 「트웨인」 친필로 된 이 원고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트웨인」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데 특별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트웨인」 말년의 생활 단면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있어 그의 전기적인 면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 원고는 「트웨인」 자신이 서문에서 밝혔듯이 그의 여비서와 「비즈니스·매니저」의 믿음의 배신이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1910년 그가 죽기 6개월 전에 쓰인 이 원고의 서문에서 「트웨인」은 『나 자신의 이야기인 이 기묘하고 치사하고 가엾은 이야기에는 세 사람의 뚜렷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두 사람은 천박하고 야비한 한 쌍의 협잡꾼이며 다른 한 사람은 천생 바보로 태어나 그들의 손쉬운 희생물이 된 나 자신이다』고 밝히고 있다.
이 원고에 의하면 「트웨인」의 비서였던 「이사벨·라이언」과 「비즈니스·매니저」였던 「랠프·애슈크로프트」는 공모하여 「트웨인」의 재산을 오용했을 뿐 아니라 가족간의 애정을 이간시켰으며 「트웨인」이 이를 눈치채기 시작하자 갑작스럽게 결혼, 신혼 여행을 겸해「런던」으로 도피했다는 것이다.
「트웨인」은 또한 당시 45세였던 「이사벨·라언」이 자기와 결혼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게 되니까 「애슈크로프트」와 결혼했다고 말하고 그녀는 늘 자기의 손등을 애무한다든가 그녀의 부채로 자기의 뺨을 간질이는 등 장난을 해 자기를 불안하게 했다고 털어놨다.
시종 욕설조와 연설조로 돼 있는 이 원고는 「트웨인」의 오랜 친구인 소설가 「윌리엄·딘·하웰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돼 있는데 실제로 이 원고가 그에게 보내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 원고의 출처는 아직까지 신비 속에 가려져 있는데 이 원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기는 70년6월 「뉴요크」 공공 도서관이 이 원고를 2만5천 「달러」 이상의 값으로 입수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이 원고는 「트웨인」의 장남의 손녀들이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뉴요크」 공공 도서관과의 계약이 파기됨으로 해서 일반 공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최근 이들이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이 원고를 기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원고의 입수 경로는 아직 확실치 않다.
한편 이 원고가 일반 공개된 후 학계에서는 이 원고의 내용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트웨인」 전문가인 「시카코」 대학교 「햄린·힐」 교수는 이 원고의 내용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비난하고 이 원고는 다만 한밤중 마지막 시간에 방송되는 연속 「드라머」의 가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트웨인」 연구소의 편집인 「프레드릭·앤더슨」은 이 원고를 집필할 때의 「트웨인」은 아주 늙고 고독해 있었는데 이 같은 원고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는 이 원고와 함께 이 원고에 관련되는 몇 가지 자료도 함께 입수했는데 그 가운데는「트웨인」의 비난을 항변하는 「애슈크로프트」의 편지도 들어 있다. 「트웨인」은 이항의 편지를 받기를 거부하면서 그 편지의 겉봉에다 「스컹크」, 『직업적인 거짓말쟁이』등 욕설을 써 놓았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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