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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기로세련계회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술 2천년 전의 회화 부문은 도자기나 조각·공예품에 비하여 그리 괄목한 것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숨어 있던 새로운 작품의 소개가 없다. 비록 원화를 볼 기화가 없었더라도 도록이나 미술사에서 이미 언급한 것들이다. 회화가 그럴밖에 없는 것은 다른 분야에는 근래 출토된 게 있게 마련이지만 회화에선 그런 게 있을 수 없다. 모두 전세 품일밖에 없고 좋은 작품일수록 일찍부터 명가의 설왕설래가 돼 있다.
그러나 서화는 예로부터 귀하게 비장 하는 세습이 있는 까닭에 막상 실물을 대할 기회란 결코 흔치 않다. 작품 명과 사진만이 전할 뿐 실물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조차 허다하다. 단원 김홍도의 대 작품인 『기로세련계회도』도 개인에게 비장 돼 오다가 모처럼 일반에게 공개하는 기회를 얻은 작품의 하나. 소장자는 L씨라고만 알려지고 있다.
경로의 잔치 풍경을 세세하게 그린 사경 산수 화폭이다. 산밑의 녹음 속에 차일 을 치고 85명의 할아버지들이 음식상을 받고 앉아 있다. 그 한가운데에서는 주악에 맞춰 무기가 마주 춤을 추고 한편에선 간이 주방을 마련해 음식을 나르는 부녀자들이 분주하다. 병풍 뒤에서는 노인을 모시고 온 존속들이 삼삼 오오로 둘러앉아 요기를 하고 혹은 어느새 취흥에 겨워 어깨춤을 춘다. 연석 아래는 거마 와 비속들. 나무해 오는 초동도 이날에는 한몫이다.
경로연은 우리 나라 고래의 풍습이다. 민간에서 회갑연을 잘 차려 베푸는 것도 그런 풍습의 일단이다. 또 조정에서는 고관 출신으로 70 이상 준하면 기로소에 등록하여 합동 축수연을 베풀어주었다. 조선 왕조 5백년 동안에 정이품 이상 벼슬한 사람으로 그 기영록에 오른 이는 7백22명. 가장 수한 사람은 인조 때 판돈령 부사를 지낸 윤강 이고 임금 중에서는 태조 (74수) 영조 (83수) 숙종 (60수)만이 기영록에 올랐을 뿐이다.
이런 기로연의 기념적 그림은 몇 폭 전하는게 있으나 이번 것은 작가가 분명하고 특히 단원의 작품이라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거기 등장된 인물이 총 2백50여명인데 각기 표정과 동작이 다르고 또 생동하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풍속화의 제1인자가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는 묘사이며 더구나 외곽 인물들의 움직임을 통하여 전체의 분위기를 흥겹게 이끈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런 풍속화는 조선 왕조 후기, 특히 18, 19세기에 한국 산수의 실경 묘사와 더불어 유행된 화풍이며 현재 유존 하는 풍속화는 대개 그때의 민서 생활에서 주제를 따고 있다. 사대부의 시회·연회도 그러한 시대 풍조의 반영이다. 147·2cm×63·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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