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重 분규 타결] 勞使자율 무시한 정부개입 흠 남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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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권기홍(權奇洪)노동부 장관은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노동부 간부들과 중재에 나서 합의를 끌어냈다.

이는 두산중공업 전신인 한국중공업 시절 공기업 노조를 다스리던 방식인 '협상 결렬→불법 파업→정부 중재'라는 수습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참여정부의 부담으로 남을 전망이다. 노동계의 춘투(春鬪)를 앞두고 정부가 분규에 대한 노사 자율 해결 원칙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개별 사업장의 노사 분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금속노조 간부와 협상을 함으로써 산별교섭의 길을 터놓았다는 비난까지 감수해야 할 형편이다.

노사 간 합의 결과에 대해 노조 측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반면 사측은 허탈해 한다. 노측의 압도적인 판정승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우선 노조원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과 노조재산 등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사측이 취하키로 합의한 것은 사측이 불법 파업에 대한 대응수단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파업기간 중 무단 결근으로 인한 순손실의 50%를 지급하기로 한 것도 사실상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사측이 깬 것이다.

파업기간 중 주지 못한 연차.월차.상여금의 50%를 보전하는 것이지 임금을 보전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우회적 임금 보전 방법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결정에 따랐던 해고자 복직 문제도 사측이 '일부 복직'이란 편법으로 해결했다.

두산중공업 노사 합의를 계기로 노동계는 쟁의행위와 관련된 손배소송과 가압류 금지 조항을 노동관계법에 명시하는 운동을 하기로 하는 등 기세가 올라 있다.

이 같은 주요 쟁점들을 사측이 거의 모두 받아들인 데는 정부의 압박 전략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창원지방노동사무소는 부당 노동행위 등과 관련해 박용성(朴容晟)회장 등 경영진에게 소환장을 보내놓은 상태였고, 검찰은 두산 계열사의 부당 내부거래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이 회사의 한 노무담당 간부는 "여러 환경이 불리하게 전개돼 노조 측 요구를 많이 수용한 부분도 있다"며 "앞으로 노조를 압박할 카드를 잃게 돼 걱정"이라고 허탈해 했다.

민주노총과 이 회사 노조는 당초 이번 사건을 춘투와 연계시킬 전략이었으나 사업장별 노조원들의 참여율이 저조한 데다 국내외 경제사정이 너무 안좋아 합의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창원=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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