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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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탁구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통설로는 19세기말 영국사람들이 「테니스」의 본을 떠서 실내「게임」으로 처음 꾸며낸 것으로 돼 있다. 영국에서는 그래서 지금도 「테이블·테니스」(table tennis)라고 불린다. 「옥스퍼드」대사전을 보면 「핑퐁」(ping-pong)이라는 말은 1900년에 생긴 것으로 되어있다.
영어에서는 「라이플」소총의 총알이 공중을 날 때라든가 모기가 날 때 내는 소리를 「핑」이라고 표기했다. 여기서부터 「핑퐁」이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얘기다. 사실 탁구공이 오갈 때는 총알만큼 빠르다. 「배트」로 공을 칠 때에는 「칭」하는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여기에도 물론 이설은 있다. 세계적인 탁구선수였던 「헝가리」의 「켈렌」은 일본이 원조이며 1천3백년 전부터 있었다고 했다.
아마 「켈렌」이 1938년에 있었던 국제시합에서 무명의 일인선수에게 어이없이 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사람들도 이설에는 별로 동조하지 않고 있다.
일본에 탁구가 들어온 것은 1890년부터로 되어 있다. 한국은 그보다 좀더 늦다. 황성 기독청년회관 안에 탁구대가 있었다니까 아마 1900년대 후반부터였으리라 짐작된다.
초창기에는 마루 위에 「네트」를 치고 「메리야스」로 싼 「볼」을 쳤었다. 그후 「코르크」제의 「볼」을 한 겹 가죽으로 싼 「래키트」로 치게 되었다. 오늘날의 「셀룰로이드」제 「볼」을 고안해 낸 것도 영국인이었으며 1898년의 일이었다.
한편 「테이블·테니스」란 말이 국제「스포츠」의 공식용어로 등장한 것은 국제탁구연맹이 창립된 1926년부터의 일이다.
그리고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기는 27년부터의 일이다. 그후 선수권은 일본·중국·「헝가리」·「체코」·「오스트리아」·미국 및 영국사이에서 계속 오갔다.
2차 대전 이후 그 중에도 특히 뛰어났던 게 일본이었다. 59년에 있었던 제25회 대회에서는 7종목 중에서 5종목을 석권했었다.
일본보다 더 놀라왔던 건 중공이다. 제25회 대회에 첫 출전한 중공은 28회 대회 때에는 7종목 중에서 5종목에 우승했다.
이때 어깨가 으쓱해진 중공 선수들은 자기네의 우승의 비결은 『모택동 어록』에 있다고 말했었다.
한국의 여자 「팀」이 그런 일본과 중공을 누르고 제32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탁구에는 한「게임」에 20분이라는 시간 제한이 있다. 만약에 이 동안에 승패를 가리지 못하면 5분 이내에 빨리「포인트」를 올린 쪽이 이기게 튄다. 그만큼 체력의 소모가 비교적 적기 때문에 「스테미너」가 크지 못한 동양인에게 유리한 「스포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또 그만큼 정교한 「테크닉」을 필요하게도 된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강인한 의지일 것이다. 이번 우승은 우리에게 든든한 뭣인가를 일깨워 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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