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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처형에 침묵하는 중국 … 체면 구긴 마오쩌둥의 기억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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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친중국파로 분류돼 온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사건에 대해 중국은 침묵하고 있다. 장성택 처형(12일) 사실이 북한 언론에 보도된 13일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외신 브리핑에서 "(그 사건은) 북한의 내부 문제"라고 짧게 언급한게 전부다. 김정일 2주기 추모대회가 열린 17일에는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장성택에 대한 직접 언급은 피한채 "김정일 총서기는 북중관계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짧게 논평했다.

 중국이 친중파이자 개혁·개방론자였던 장성택 숙청에 공개적으로 무반응인 이유는 무엇일까. 냉전사(冷戰史) 전문가인 북한대학원대학교 신종대(정치학) 교수는 냉전시대 북·중 관계의 경험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북한 내부의 권력투쟁 사건에 섣불리 개입했다가 낭패를 당한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된 장성택 사건에 형식적으론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 사례가 박헌영 전 남로당수 처형이다. 김일성이 6·25전쟁 실패 책임을 뒤집어 씌워 1953년 3월 박헌영을 가택연금하자 마오쩌둥(毛澤東)은 “박헌영 같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이를 묵살하고 55년 12월 ‘미제(美帝)의 고용 간첩’으로 몰아 박헌영을 사형에 처한다. 마오쩌둥으로선 체면을 구긴 셈이었다.

 김일성이 연안파(친중세력)와 소련파를 숙청한 56년의 ‘8월 종파사건’ 때도 중국은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다. 마오쩌둥은 당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장이던 김일성을 해임하려고 펑더화이(彭德懷)를 미코얀 당시 소련 제1부수상과 함께 평양에 파견했으나 역시 김일성이 선수를 치는 바람에 실패했다. 결국 마오는 57년 11월 모스크바에서 김일성을 만나 “(56년 종파사건 때) 김일성 노선이 옳았다”고 인정하면서 사실상 사과까지 해야 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6·25전쟁 때 출병한 인민해방군을 북한의 요구로 58년 말에 철수하기에 이른다.

 박병광(중국정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은 북한의 종파사건에 함부로 개입하려다 크게 손해를 본 트라우마가 있는 데다, 내정불간섭이라는 외교원칙 때문에 장성택이 숙청됐지만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박 연구위원은 “3차 핵실험에 이어 장성택 처형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중국 내부에서는 굉장히 기분 나빠 하면서도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김정은을 대체할 대안 세력이 북한에 없고,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중국이 포기할 수도 없어 좋든 싫든 북한을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중국을 매우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베이징을 방문한 이태환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실장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중국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조차 장성택의 처형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혹스러워했다”면서 “그럼에도 북·중 경협이 쉽게 중단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장성택을 대체할 인물이 나오길 기대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 학습시보(學習時報) 부편집을 지낸 덩위원(鄧聿文)은 16일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은 장성택 처형 이후 언짢아진 중국의 마음을 달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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