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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공산당의 현실노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본지는 최근 일본의 저명 종합지에 실린 일본공산당 간부 스스로가 보는 정치관을 소개한 바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구한말 실시한 일본총선에 있어서 일본공산당이 주로 대도시에서 승리하여 38명의 당선자를 중의원에 보냈다는 사실은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공산당의 이 같은 놀라운 의석증가는 선진자본주의사회에 있어서 공산당이 취하는 기본적인 정치자세, 특히 합법적인 의회투쟁에 주력하는 공산당의 전략·전술과 관련하여 허다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이다.
구한말 총선에 있어서 일본공산당이 거둔 성과는 다음 몇 가지 사유에 기인한 다고 풀이되고 있다. 첫째, 국제정세의 격동기에 즈음하여 일본정치도 전환기에 서 있다. 일반적으로 전환기에 있어서는 중간파 정당이 몰락하고 국민의 투표가 좌·우 양극으로 갈려지는 경향에 있다. 둘째,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에 따르는 부정·부패의 만연은 반체제정당에 대한 기대를 크게 했다. 셋째, 일공은 자주성을 강조하고, 의회민주주의(복수정당제와 정권의 합헌 적인 교체) 기치를 선명히 했다. 이것이 「프롤레타리아」독재에 대한 혐오감을 완화시켰다. 넷째, 일공은 그 선거강령에 있어서, 자본주의제도의 합법적인 폐지, 사회주의 체제에의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이행을 내세웠는데 이것이 현 체제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 소시민층에 「어필」한 바 컸다.
이상 네 가지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이유를 손꼽는 사람이 있겠지만 위와 같은 분석과 평가는 대체로 진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우리가 문제로 삼아야할 것은 공산당이 정정한 의회민주주의 정당이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달과 소득평준화를 향한 자본주의의 꾸준한 체질개선은 선진국가로 하여금 폭력혁명이 통할 수 없는 조건을 갖추게 하였다. 바로 이 때문에 「프랑스」나 「이탈리아」등에서는 벌써 1950연대부터 공산당이 합법투쟁을 통해 의회에 많이, 진출하는데 주력해왔다.
이 두 나라 공산당은 비록 합법투쟁을 통한 의회 진출을 중요시했다고 하지만, 이론상 폭력혁명에 의한 현 체제 전복의 노선을 포기해 본 적이 없고, 또 실천면에 있어서도 합법적인 의회투쟁과 비합법적인 폭력투쟁을 아울러 전개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 몇 해 동안 일본공산당은 비합법적인 폭력투쟁을 부인하고 다른 의회정당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평화투쟁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일공이 그 정치강령에서 ①비폭력·합헌 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겠다②정권을 잡은 뒤에도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실시치 않고 반대정당과 공존하겠다 ③현 유 체제를 국민의 동의를 얻어 서서히 변혁할 것이며 ④독과점적 중요 기간산업은 국유화하되 유상으로 몰수하겠다는 등등의 주장을 대담하게 내세워 민주주의 원칙 존중에 의한 체제 전환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가볍게 보아 넘겨서는 안될 사실이다.
일공의 이 현실적인 유연성이 과연 그들이「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폭력혁명노선이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판단하고「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통적인「이데올로기」나 전략·전술에서 과감히 탈피하겠다는 것인가, 또 혹은 의회주의 정당을 위장하고 대중을 기만하여 선거의 표전을 넓혀 가꾸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인가, 단을 내리기에는 아직도 시기상조다. 그러나 오늘의 일본공산당노선이 위에서 지적한 첫 번째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상 일어나고 있는 일대 혁명적인 변화로서 우리는 그 방향을 예의 주시해야 한다.
56년2윌 소련공산당 전당대회에서「흐루시초프」는 그 유명한『「스탈린」격하 연설』을 통해 『사회주의의 다양성』을 처음으로 공인하였다. 이 다양성은 건설해야 할 사회주의사회 설계도의 다양성, 그리고 사회주의로 가는 방법의 다양성을 아울러 가르친다. 이 언명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에 대한「모스크바」의 일원적인 통제의 이완을 상징하는 것이요,「마르크스」주의의 민족화 경향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의회주의원칙에 따라 합헌적으로 정권을 잡고 평화리에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적으로 내세운 것은 일공이 최초이다. 현 단계에서 일본공산당이 단독으로 혹은 사회당과 연립하여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아마도 당분간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그러나 일공의 경우처럼 온순한 양의 탈을 쓰고 일상적으로 표전을 넓히고 가꾸어 의회에 자꾸만 진출하게 된다고 하면 그 영향력의 증대는 자못 현저할 것이다. 선진자본주의가 이러한 공산당의 체질개선, 공산주의 운동의 질적 전환에 대해서 어떤 해답을 내릴 것인지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로서도 각별한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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