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한-일본 교역의 창구 역|협아물산|발족에서 해산까지…그 6개월의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북한과 일본의 정계 재계를 연결하는 파이플라인 역할을 하며 대북한무역을 목표로 설립된 협아물산이 발족 6개월만에 좌초되고 말았다.
애당초 설립당시부터 안개에 싸인 이상야릇한 회사였던 협아물산은 결국 사장 고해충지씨를 비롯, 전 임원의 총 퇴진이라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이 회사의 좌초는 북한측의 대표 역 격인 김병식의 실각에 의한 것이 확실하다.

<처음부터 이상한 사회>
협아물산은 작년 7월3일 우리나라와 북한이 남북평화통일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 바로 전에 설립되었다. 남북 대화 무드 속에 시기를 제대로 잡은 취지였으나 처음부터 이 회사는 이상야릇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사장 자리에 앉았던 고해충지씨가 전전 만주국 총무청 차장으로 오랫동안 활약했던 사람으로 소련과 중공에 18년간이나 억류되었던 일이 있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뿐만 아니다.
막후 인물로 재계 스폰서를 움직이기 위해 활동했던 사람이 바로 일본의 대륙침략 최대 수수께끼 인물로 손꼽히고 있는 시차일부(현 국책연구회 상임이사)이며 전 일본외상 복전규부씨의 중공문제 브레인으로 알려진 복가준일씨 등도 거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차일부씨 등과의 북한측 교섭상대였던 김병식(재일 조총련 제1부의장)의 실각이 문제가 안 된다 하더라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북한과 시차일부씨, 사장 고해충원씨 등이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사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협아물산의 발족에서부터 해산에 이른 과정은 바로 미스터리 극의 한 토막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제1막>
『내 추측이긴 하지만 협아물산이 태동하게 된 동기의 인물은 재작년 중공과 북한을 방문했던 미 농부 동경도지사가 아닌가 싶다. 그때 김일성은 미 농부지사를 열렬히 환영하고는 일본과의 무역확대를 적극적으로 벌이고 싶다고 밝혔기 때문이다.』(평론가 옥성소씨의 말)
이 황당무계한 추리를 밝히기 위해서는 무대를 전전의 상해로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시 상해에는「대륙신보」라는 국책신문이 발행되고 있었다.

<친 한파도 설립에 참여>
이때 사장으로 있던 이가 시차일부씨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복가준일씨 이었다. 그 복가준일씨 밑에서 사회부장을 하고 있던 이가 소삼무씨 이었다.
미 농부지사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의 브레인 중 한 사람인 소삼무씨가 동행을 했었던 것이다. 옥성소씨의 견해에 의하면 복가준일씨, 그리고 복전 외상으로 연결되는 소삼무씨가 대 활약을 하여 김일성의 양해를 얻기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삼무씨, 복가준일씨, 시차일부씨로 이어지는 한 줄기의 연관 선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제2막>
무대는 동경으로 옮겨져 등장인물은 시차일부씨, 고해사장 등과 그 당시 조총련 안에서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김병식.
『시차일부씨에게 김병식이 일본측의 창구역할을 할 조직을 만들 수는 없는가를 부탁해온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시차일부씨로서도 김병식의 이야기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본다. 그 때만해도 조총련 안에서 그에게 대항할 만한 인물은 없었으며 과감히 일을 처리할 파이프는 아니지만 상당한 지혜 자였음에는 틀림없었기 때문에 김병식에게 홀리고 만 것 같다.』(고해충지 사장의 말)

<김, 사회 관계자에 비굴>
김병식의 청을 들어주기로 한 시차일부씨는 신일전·동지·석천·파마중공업 등 유력한 기업체를 끌어들여 협아물산의 설립을 계획하는 동시 사장 감으로는 고해충지씨를 찍었다는 것.
그러나 김병식이『한국과 대만의 로비이스트』라고 불리는 거물급들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에 문제의 열쇠를 푸는 추리가 있다. 즉『김병식은 오래 전부터 그들과의 연 관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하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김병식이라는 인물은 어딘지 불가해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가 처음 일본에 나타난 것은 소화 18년째로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당사자는 대륙의 좌익계에서는 금족령이 내려 있는 몸으로 돌아가려야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결국 전전서부터 상해의 대륙양인 복가준일씨 등과 친하지 않았는가 생각된다.』(모 소식통)
물론 이러한 추측이 있어서도 관계자는 즉석에서 부정하고 있다.
김병식이 실각하기까지의 시차일부씨·고해충지씨와의 밀월시대.
『김병식의 협아물산 관계자에 대한 태도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비굴하기까지 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시차일부씨 등에게 선생님이라고 깍듯이 존칭어를 썼지만 자기는 김 군으로 불러졌다는 것이다. 즉「잘 부탁합니다」라고 굽실댔다고 한다.』(통일조선신문 이승환 편집장)
한편『시차일부씨와의 회담내용은 즉일로 일본정부에 알려지다시피 되어 그 내용에 대해서는 상세한 6개년 계획내용 등도 짜여 저 있던 것으로 보인다.』(평론가 등도자내씨 말)

<돌변한 북한사절 태도>
그러는 동안 협아물산과 김병식 사이에는 상담이 진전되어『80억 엥 정도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으로 북한에 연락을 취했으나 목하 검토 중이라고만 할 뿐 연락이 끊어졌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시차일부씨와의 사이에 오갔다. 결국 실질적으로는 아무성과도 없었던 것이다.

<제3막>
드디어 주역인 김병식의 실각. 동시에 재계도 태도를 바꾸어 정관 상태에 들어가고 말았다. 김병식의 실각 뉴스가 일본에서 공공연히 퍼져 나왔던 것은 작년 10월께. 한국신문에서는 조총련의 내부 분쟁 설이 크게 보도되었다.
한편 김병식 비판의 소리가 조총련 안에 퍼지자 하부조직으로부터 불은 붙기 시작했다.
조직을 사물 화하고 오랜 활동가를 독단으로 분파분자로 몰아낸 일, 그리고 매각행위에 급급해 거액의 용도불명의 공금을 써버린 일 등.
작년 10월 김병식은 북한으로 돌아간 뒤 협아물산 관계자와도 일체 연락이 끊긴 상태에 있다. 즉 파이프는 완전히 끊어지고만 것이다.
더구나 작년 10월부터 11월 사이에 걸쳐 일본에 왔던 북한 경제사절단은 지금까지 김병식이 취하고 있었던『잘 부탁합니다』라는 태도와는 1백80도로 태도를 바꾸고 있었다.
일본 기자들에게『일본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그들은『일본에 우리는 아무 것도 기대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일본이 평등호혜의 정신으로 무역을 하고자 한다면…』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태도는 지금까지 일본재계가 북한에 대해 알고있던 바와는 아주 달리 고압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시차일부씨, 고해충지씨는 먹으려던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만 셈이다.
또 북한측의 방침이 급 전환된 것은 김병식의 실각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중공은 전범사장을 기피>
즉 한마디로 말하자면 중공 측에서 압력이 가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리이다. 작년 10월 말 김일성은 북경을 비밀리에 방문했다는 정보가 있다.
또 연말에는 중공의 희 외상이 북한으로 오기도 했다.
결국 작년 9월부터 12월 사이에 중공과 북한 사이에 일련의 접촉이 이루어져 일설에 의하면 중공이 석유를 북한에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 동시에 대일 정책의 변경을 하게된 것은 아닌가. 중공으로 보면 고해충지씨 등은 전범이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협아물산은 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사장 고해충지씨는『목하동면 중』이라고 말한다.
일본의 정계와 재계에 한 때 파문을 일으키며 발족된 협아물산의 주역들도 이제 교체될 시기가 온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외지에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