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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라 아주머니의 엄격함은 종교에서 나왔지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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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홍주연

마릴라 아주머니는 왜 그렇게 엄격했을까.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몇 있다. 그중의 하나가 『빨간머리 앤』이다. 앤이 초록지붕 집에 온 후 처음으로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기억나시는지? 바로 최신 유행의 드레스였다! 지금 생각해도 오 헨리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선물(매기의 선물)』에 등장하는 델라가 받은 빗과 함께 앤이 받은 드레스는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던 것 같다. 흉보지 마시라.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이 받고 싶은 최고의 선물은 옷이나 장신구인 법.

캐나다 에이번리 마을의 초록지붕 집에 사는 매튜와 마릴라 남매는 농사일을 도와줄 수 있는 사내아이를 양자로 보내 달라고 고아원에 부탁한다. 그런데 착오가 생겨 여자아이인 빨간머리 앤이 온다. 남매는 아이를 돌려보내려다가 마음을 바꿔 앤을 키우게 된다. 이후 앤의 성장 이야기가 이어진다. 물론 앤은 매튜와 마릴라 남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다. 그런데 마릴라 아주머니는 앤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항상 앤을 엄격하게 대한다. 새 옷을 세 벌이나 만들어 주면서도 밋밋한 소매의 어두운 색 드레스만 만들어 준다. 앤은 실망한다. 매튜 아저씨는 이를 안쓰럽게 여겨 이웃 아주머니께 부탁해 소매가 봉곳한, 최신 유행의 드레스를 만들어 앤에게 선물한다. 궁금하다. 마릴라 아주머니는 왜 그렇게 앤을 엄격히 대했을까?

이야기 속에서 앤이 주일마다 장로교회에 가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그렇다, 마릴라 아주머니의 엄격함은 그녀가 믿던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캐나다는 영국과 프랑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다. 프랑스 이민자들은 가톨릭 교회를, 영국계 이민자들은 개신교 교회를 캐나다에 세운다. 영국계 개신교 신자들 중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이 세운 교회가 바로 장로교회다. 지금은 우리가 그냥 다 영국이라고 부르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로 합쳐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300여 년 전밖에 되지 않은 1707년의 일이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의 연합 왕국이 되기 전까지 두 나라 사이에는 왕위 계승 문제와 종교 문제, 지방 귀족들의 이권 문제가 합쳐져 심각한 문제가 많았다. 비록 16세기에 종교개혁을 통해 영국은 로마 교황에게서 독립해 독자적인 국교회의 길을 갔지만, 그것은 잉글랜드만의 역사였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 역사는 달랐다. 스코틀랜드의 국교는 성공회(헨리 8세가 종교개혁으로 성립한 잉글랜드 국교를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말)가 아니라 장로교회다.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는 칼뱅주의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존 녹스가 기반을 다졌다. 칼뱅주의 개신교 신자들은 잉글랜드에서는 청교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장로파라 불린다. 이들 칼뱅주의자들은 교회의 장식도 검소하게 했으며 카톨릭의 사치, 향락 풍조를 비판했다. 일상생활에서도 늘 경건한 자세를 강조해 금욕적으로 가정 생활을 꾸려 가고 아이들을 엄격하게 교육했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이민자의 후손인 장로교회 신자 마릴라 아주머니는 앤을 사랑하면서도 앤이 잘못될까 봐 자신이 배운 바에 따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앤을 엄격히 대했던 것이다. 앤에게 최신 유행 드레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매튜 아저씨를 못마땅해했던 것이다.

청교도든 장로회든, 과거 대영제국의 개신교 신자들은 늘 성공회보다 엄격하게 기존 가톨릭에서 벗어나려 했다. 크리스마스도 로마 가톨릭의
이교도적인 축제라고 비난해 이날을 명절로 쇠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성스러운 크리스마스 본래의 의미와 달리 폭식이나 음주가무, 도박으로 이어지는 시끄럽고 향락적인 분위기를 경계했기 때문이다. 그 취지는 이해하지만 세상에, 크리스마스를 금지하다니! 크리스마스 선물도, 산타 할아버지도 없다니! 이 글을 읽는 어린 친구들이 놀랄 만한 일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기존의 크리스마스 풍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한번에 바꿔 준 고마운 작품이 19세기 중반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궁금해도, 다음 편에. 궁금해도 기다리시라, 하하.

박신영『백마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돌아다닐까』 저자, 역사에세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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