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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평화 모색에의 정중동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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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월남 휴전을 마무리 지은 후「닉슨」은 의회에 보낸 연두 교서를 통해 미국의 다음 외교 목표가 중동 평화를 이루는데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한숨 돌리면 「전쟁도 평화도 아닌」 중동 사태가 우선적으로 취급될 것이라던 항간의 추측이 제대로 들어맞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닉슨」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요르단」의 「후세인」왕 (6일)과 「이스라엘」의 「메이어」수상 (3월1일)을 연달아 맞아들임으로써 전격 공세로 나왔으며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도 6일 자신의 특사를 소련에 파견, 이와 같은 움직임에 손발을 맞춰 줬다,

<주재파들의 인식 변해>
지난해 3월 이른바 「아랍」 연합 왕국 안을 발표, 주전파 「아랍」국가들 사이에 『배신자』로 몰리기도 했던 「후세인」왕은 중동 평화의 거간꾼으로서는 가장 적격자로 꼽히고 있다. 말하자면 주전파들의 인식이 그 동안 그만큼 변했다는 얘기이다.
「아랍·내이셔널리즘」의 기수이자 주전파의 총수이기도 한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아직 자신의 이와 같은 변모를 입에 올리지는 않았다. 『「이스라엘」파의 일전은 피할 수 없는 일』 (72년12월28일)이라고 못박는가 하면 『전쟁 이외의 해결 방법은 없다』 (1월30일) 고 국민들에게 연설하는 등 적어도 겉으로는 조금도 누그러진 기색을 안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관계 전문가들은 「사다트」가 「전쟁에 의한 해결」은 이미 오래 전에 포기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71년7월 소련 군사 고문단 축출극을 연출한 이래 주전파들이 겪었던 각종 시행 착오가 이와 같은 결과를 빚었다는 풀이이다.
「사다트」는 『과감한 성전, 영광스러운 승리』를 요구하는 「아랍」권의 여론에 호응하기 위해 소련에 군원의 대폭 증가를 요청하다가 마침내는 축출극까지 벌였던 것이다.
그러나 소련 대신 끌어들이려 했던 영·불·미 등이 모두 주춤거리기만 하자 일단 쫓아 보냈던 군사 고문단을 다시 불러들이고 군원의 재개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사다트, 유고도 방문>
관계 전문가들은 「사다트」가 이때의 실패 이후 「전쟁에 의한 해결」보다 「대국간의 흥정」을 이용하자는 쪽으로 돌아섰을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12월의 「유고」 방문, 「아프리카」에서의 「이스라엘」 고립화 공세 등도 이와 같은 노선 변경의 부산물이라는 분석이다.
고 「나세르」 대통령이 중대한 일이 있을 때마다 「티토」와 상의했듯이 「사다트」는 지난해 12월 「유고」를 방문했다. 회담의 내용은 일체 알려지지 않았으나 「티토」는 강대국들의 연대 보증만 있다면 평화 협정을 체결하도록 충고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측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사다트」는 「유고」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 「요르단」의 「제이드」 외상을 만났다.
미국으로부터 연 5억 「달러」 (72년)의 원조를 받으며 72년3월 국교까지 끊었던 「사실상의 적대국」 외상을 맞아들인 것은 「이집트」국민들에게 대단히 「쇼킹」한 사건이었으며 외교 「업저버」들 역시 「모종의 새로운 움직임」이 곧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후세인 방미로 긴장>
따라서 이번의 「후세인」 방미는 이러한 일련의 배경에 비춰 볼 때 단순히 「요르단」과 미국 사이의 현안 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후세인」의 방미 길에 오르기 직전 「사다트」가 국내의 『과격파』들에 대해 일대 숙청 작업을 벌였다는 사실이다. 「카이로」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들은 『극우 및 극좌 분자로 종파 행위를 일삼았던 자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외교 「업저버」들은 이것이 평화 협상을 앞둔 자체 정비의 일환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이집트」는 물론 「시리아」 「리비아」 등 주전파 국가의 학생·지식인들은 지금까지 「결전의 시기」가 늦어지는데 대해 끊임없이 정부를 비난해 왔다.
또한 이들의 비난은 「나세르」 시대의 「아랍」 민족주의에 심취되어 있던 대중들로부터 전적인 지지를 받아 왔었다. 연초에 「카이로」를 뒤흔들었던 대학생 「데모」도 바로 이와 같은 성질의 것이었다.
따라서 「사다트」의 입장에서 보면 주전파들의 둥 뒤에서 구태의연한 탁상 공론만 벌이는 이들을 제거하지 않는 한 협상「테이블」에 앉는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분쟁을 얼버무릴 듯>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중동 평화 알선에 발벗고 나선 동기 및 2백만 「팔레스타인」난민의 처리에 있다. 「카이로」의 「알·아람」지도 지적했듯이 「닉슨」이 중동 평화를 우선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이것이 세계 평화의 암이라는 점 외에 중동의 석유 자원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이 이와 같은 「모티브」 때문에 뛰어든 이상 「팔레스타인」 실향민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거의 안중에도 없을 것이며 따라서 평화가 이뤄진다 해도 정작 분쟁의 핵심은 얼버무리는 선에서 이뤄지지 앉겠느냐는 얘기이다.
어쨌든 「후세인」에 이어 오는 3월1일 「메이어」의 방미가 끝나면 「닉슨」의 중동 평화 구상은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설사 「데탕트」를 갈망하는 소련으로부터 동의를 얻는다 하더라도 「팔레스타인」 난민이 『등터진 새우』격으로 될 것만은 틀림없다 하겠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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