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경문화의 기원|한국사 연구위 제3회 고대사「세미나」 신문협 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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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신문협회 주관 한국사 연구위원회의 제3회 고대사「세미나」가 『한국농경 문화의 기원』을 주제로 23일 하오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주제발표는 김정배 교수(고려대), 김원룡 교수(서울대 문리대·고고학)를 사회로 김정학(부산대) 윤무병(국립중앙도서관 부관장) 이청령(서울대 농대) 김열규(서강대·민속학) 김도정 교수(서울대 문리대·지질학) 천관자씨 등이 토론에 참여했다.
김정배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한국의 선사 고고학에서 원시 농경문화의 기원을 찾을 때 신석기시대 말기로 소급, 이는 세계 고고학의 일반적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의 신석기 시대 유적과 유물은 강구·해안·도서지역에 산재돼 경제생활이 주로 어로였다. 물론 약간의 수렵도 있었다.
이 신석기시대 경제생활의 변화는 역시 농경의 출현이다. 한국의 신석기 문화는 특히 「시베리아」와 관련된 것이다.
봉산군 지탑리의 신석기 말기 유적에선 조·피의 탄화물이 석우와 함께 나왔으며 용강군 궁산리에선 석추·녹각추·녹각굴봉 등 농경기구가 나왔다.
특히 궁산리에선 저아로 된 겸이, 지탑리에선 석겸(돌낫) 등 수확구가 있다. 이는 야생의 피·조이기 보다 재배물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또 신석기 토기 가운데 큰 것들은 곡물 저장용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역시 신석기 혁명이 아니었다. 또 그것은 전통적 신석기 문화의 발전이 아니고 무문토기라는 이질문화의 영향에서 성립된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무문토기는 마제석검·반월도 또는 청동기와 함께 나오고 있다. 반월도 등 수확구는 입증되나 어떤 종류의 곡물인지는 잘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이 시대의 도작이 출현하는데 일본에서도 미생 문화기에 도작이 있은 것으로 봐 우리도 도작이 있었던 것 같다는 것. 김해 패총에서 탄화된 쌀이 나왔으나 이것이 AD 1세기 것이므로 그 전에 도작이 있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결국 신석기 시대는 식량 생산단계이기 보다 채집단계(김정배)라는 것과 신석기 후반부턴 서양처럼 농경이 주(김원룡)라는 주장이 맞섰다.
또 신석기의 무문토기와 농경이 함께 있다(김정배)는 주장과 순수한 절문토기 후엔 농경이 들어온 것으로(김원룡)보는 주장이 맞섰다.
이 시대의 농경도구로선 토기도 무시할 수 없는데 가장 발달한 농경기인 중국의 용산 문화식 흑도가 우리 나라에도 있어 농경이 설명되고(김원룡·김정배) 있는데 우리 흑도는 용산 흑도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없고 무문 후반에야 같다(윤무병)는 주장이 엇갈렸다.
김원룡씨 등은 반월형 석도나 흑도가 용산·한국·일본에 연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나 일인학자들 사이에선 석기는 한국서 왔으나 쌀은 중국 남부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는 것.
도작 유입은 북방서 왔다(이춘령) 남방서 왔다(김정학)는 설과 김원룡씨처럼 양자를 함께 인정하는 등의 의견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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