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상읽기

2013 한국경제 성적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벌써 12월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달력에 마지막 한 장이 달랑 남고, 날씨가 제법 겨울 티를 내면서 한 해가 저무는 것을 실감케 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이즈음이 되면 지난 한 해를 되돌아 보고, 그 성과를 저울질해 본다. 각자가 한 해를 마감하면서 결산서를 뽑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남부럽지 않은 흑자에 가슴이 뿌듯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붉은색이 선명한 적자에 가슴이 시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민 개개인의 손익계산서를 다 합친 한국경제는 올 한 해 어떤 성적을 냈을까. 겉으로 드러난 지표만 보면 올해 한국경제의 성적표는 무난해 보인다. 어쩌면 꽤 괜찮은 결과일 수도 있다. 우선 연간 성장률이 2.8%로 추정돼 기대만은 못했지만 지난해의 2.0%를 바닥으로 회복세에 돌아선 기색이 완연하다. 수출 호조를 발판 삼아 경상수지는 대규모 흑자를 이어갔다. 디플레이션의 우려도 있지만 연간 1.2%의 물가상승률은 경제의 안정기조가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증표일 수도 있다. 잘하면 성장과 물가, 국제수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기록적인 한 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지표상의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펴졌다는 느낌이 확 오질 않는 것은 웬일일까. 경제가 성장했고, 물가는 안정됐다는데 내 호주머니는 별반 불어났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지난해 낮은 성장의 기저(基底)효과를 감안하면 그다지 많이 오른 것이 아니다.

3%에 못 미치는 성장률로는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을 갖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나마 그런 성장도 주로 수출대기업들의 몫이 크고, 내수(內需)의 기여도는 낮아 국민 개개인의 소득 증가로 나타나기 어렵다. 대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국내 경제에 스며드는 낙수효과가 갈수록 줄어드는 데다, 체감경기와 직결되는 국내투자와 소비는 여전히 부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까지 가계의 분기별 실질 소득 증가율은 각각 0.3%와 1.3%, 1.6%에 그쳐, 전체 분기별 경제성장률 1.5%와 2.5%, 3.3%를 훨씬 밑돌았다. 전체 경제성장률 자체가 경기 회복을 단정짓기 어려운 데다, 가계의 소득 증가분은 그보다도 못하니 경제가 나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는 것이다.

 지표상의 한국경제 모습을 한 꺼풀 벗겨보면 사정은 더 심각해진다. 가계빚과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박근혜정부가 유일한 수치목표로 잡고 있는 고용률은 70%의 목표치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다. 국민들이 빚만 잔뜩 짊어진 채, 없는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형국이다. 이러다 보니 세금도 제대로 걷히지 않고, 나라의 재정 상태는 갈수록 쪼들리고 있다. 내수 회복과 가계빚 해소의 관건인 부동산 경기는 벌써 몇 년째 바닥을 기다 못해 아예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이러니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한기가 더해지는 것이다.

 올해는 그렇다 치고, 그러면 내년엔 어떨 것인가. 국내외 예측기관들은 내년 한국경제가 3%대 후반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아무래도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런 낙관론의 대전제는 세계경제가 내년에 크게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 성장률이 올해 2.9%에서 내년엔 3.6%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가 세계경제의 회복에 발맞춰 회복세를 보일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나 여기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는 세계경제가 살아난다는 전망 자체가 그다지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미국경제의 회복이 두드러진다지만 양적완화 축소 이후에도 계속 회복세를 이어갈지 의문인 데다, 미국을 제외하고는 유로존과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의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신흥국들은 오히려 성장세의 둔화가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계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수출에 목을 매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그것이 국내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즉 지표상으로 경제가 아무리 개선되더라도 국민이 실감하는 체감경기는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년간 한국경제는 간신히 현상유지는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묵은 숙제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찾지 못했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반부터 한국경제의 성장비전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성장의 발판이 될 구조적인 체질 개선도 하지 못했다. 상반기엔 경제민주화로 세월을 보냈고, 하반기엔 기초연금과 세제 개편 논란으로 허송했다. 규제 개혁과 서비스업 육성을 통한 내수 중심의 경제구조 개편은 손도 못 댔다. 국회가 정쟁을 벌이느라 주요 경제법안의 처리가 지연됐다는 탓을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사정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성장을 탈출할 근본적이고도 획기적인 성장전략을 마련하지 않는 한 내년에도 대외변수에 휘둘리는 천수답 경제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걱정인 이유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