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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선영 봉수 창호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창호지 사소』『내 종이 사이소!』닷새만에 서는 신반지전에 나온 촌로들이 창호지 한 아름을 안고 외치는 광경이다.
고고한 그 외침은 예나 다름없는데 장인도 거간도 이젠 악착스러움을 잃어버린 쓸쓸한 시장풍경-. 장날인데도 대여섯동 밖에 나오지 않았다.
10여년 전만해도 장날엔 으례 50여동 이상이 나왔으나 요새 시장은 선지 불과 3시간만에 철시된다.
그래도 의령군 봉수면 서암 방계 청계리 일대는 예부터 이름난 창호지의 원산지. 신반장이 서는 날이면 초라한 두루마기 차림의 촌로들이 십릿길을 걸어 신반장에 나가 창호지를 팔았고 그래서 어느 결엔가 「신반창호지」로 소문났다. 「신반창호지」는 지질이 뛰어나 이조의 인쇄술을 더 한층 발전시키는데 보탬이 됐고 비단과 함께 역대에 걸쳐 중국과 교역하는 상품으로 우리 조상네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마을사이에 사시사철 흐르는 청계천 냇물이 맑아 거기에서 바랜 종이의 질이 더 한층 질기고 선명한 것으로 예부터 이름났지요.』-4대째 창호지를 만들어온 서암리 노만수씨(50)의 말이다. 의령 일대는 온난다습한 기후로 닥나무의 원산지. 병풍처럼 둘러싸인 야산에는 베고 남은 검은 닥나무(저) 그루터기가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고 차고 맑은 청계천 물에 저피를 바래는 아낙네들의 손길이 바쁘게 보였다.
닥나무는 보통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9, 10월에 베어 가마에 넣고 삶아 껍질을 벗겨 백저가 되면 다시 찬물에 바래고 가성 「소다」수에 삶은 뒤 방망이로 빨아 고운 섬유질을 뽑는다.
곱게 가공된 섬유질을 딱풀(황촉규)과 배합하여 지통에 넣고 한참동안 휘저어 죽처럼 엉기면 섬유를 대로 만든 발(렴)로 건져 종이를 뜬다.
한쪽 끝에 실을 가로로 넣고 섬유를 발로 2번씩 퍼부으면 종이 한 장이 만들어진다. 한 사람이 하루 5백여 장을 뜰 수 있단다. 이렇게 뜬 종이는 1주일 정도 볕에 말린 뒤 마지막으로 1백도 내외의 철판 위에 놓고 건조하면 맑고 투명한 창호지가 만들어진다.
종이의 질은 원료를 배합하고 섬유를 뜨는 기술자들의 손에 좌우된다. 그러나 수백년 동안 뚜렷한 기술적인 이론의 전래가 없어 모두 직감에 의존한다고.
맨 처음 우리 나라에 창호지가 들어온 것은 고려승 담징에 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봉수참호지』는 약 1천년 전 고려조 때 서암리 국사봉 밑에 있었다는 대동사주지 설스님이 전해왔다는 설화가 남아있다.
처음 설스님은 닥나무를 중국에서 얻어와 껍질을 맑은 청계천 물에 씻은 뒤 돌로 쳐보니 질긴 섬유가 나오는 것을 발견, 종이제조법을 만들었고 그 뒤 명성이 떨쳐 궁중에 진상도 했다고 전한다.
『옛적엔 시집갈 새악시가 가난해 비단옷을 해 입을 수가 없자 당시 「보물」로 알러졌던 이 봉수창호지에 물감을 들여 비단옷처럼 옷을 해 입고 시집갔었다』는 전설을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서 들어왔다는 노씨는 『나라가 없어져도 창호지는 없어지지 않는다』는 부친의 교훈을 받으며 기술을 배웠고 이젠 천직이 됐다고 했다.
『창호지는 부드럽고 질겨 실용적이고 밝은데다 통풍이 잘 돼 사람이 오래산다』며 요새는 외국에서도 유리보다 더 위생적이라고 큰 「호텔」의 창도 창호지를 쓴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제지공장들이 「펄프」와 방수제를 혼합, 제조한 저질 창호지가 대량으로 나오면서부터 타격이 커졌다. 대중들은 실과 무늬를 넣어 더 아름답고 질겨 보이는 이 값싼 날림창호지를 더 좋아하기 때문-.
재작년 신반에 「펄프」공장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동네 영세업자 30여 호를 모아 1년에 총 3백여 동을 생산, 7백만원을 벌어 순수익만 1백50만원이나 됐다는 노씨는 이미 닥나무가 심겨진 2만여 평의 임야를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지난63년 창호지제조를 븍돋우기 위해 신반에 경남한지공업협동조합이 설립됐으나 역시 신흥 제지업자들에게 밀려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중은 고유한 것보다 새로운 것에 더 관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재래의 창호지가 갖고 있는 장점을 살려 그 제조방법을 개선하고 질을 높여 「펄프」지와 대항할 수 있는 행정적인 지원만이 우리 고유의 것을 살리고 보존하는 길이다』라고 한지협동조합장 최재인씨(47)는 말했다. <글 원대연기자|사진 김택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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