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월남』후의 「아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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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눈앞에 다가온 월남휴전은 양극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세력균형이 「아시아」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신질서 구축작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예견되는 미·소·일·중공 등은 혹은 전후복구사업이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또 혹은 「민족해방전쟁의 대후방」이었다는 지정학적 근린관계를 내세워 제각기 자국의 개입 근거 내지 타당성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월남휴전이 한 분쟁의 종장인 동시에 어쩌면 새로운 분쟁의 서막이 될 수도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물론 미·소·일본·중공 등 「아시아」에서의 새 질서개편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열강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개입하는 것을 반드시 「밀림의 생존법칙」이라고만 비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월남 전후의 「아시아」각국이 국민들의 복지향상을 위한 경제개발에 주력할 것인가, 아니면 냉전적 대립이라는 비극을 여전히 되풀이 할 것인가는 오로지 이들 4강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이미 동남아에서의 군사적 개입을 허용할 수 있는 최소한도까지 축소했다. 하루아침에 세계 제3위의 공군력울 보유한 월남, 급격히 팽창해 가는 태국내의 미군기지 등이 미군의 직접 개입의 의의를 훨씬 축소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질·양 어느 면으로 보더라도 동남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퇴조현상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뉴요크·타임스」지가 적절히 지적했듯이 이것은 결코 「아시아」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의 축소나 포기를 바탕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도미노」 현상에 대한 위구심, 해양국가적 방위개념에 있어서의 「아시아」의 중요성 등은 여전히 「닉슨」정부의 정책입안과정에서 중요한 작용을 할 것이며, 이것은 방대한 대월남 및 「아시아」 자산우방국가들에 대한 군비원조로 충분히 증명되었다.
문제는 미국의 이와 같은 「군사개입 축소-정치적 영향력 고수」라는 정책에 대해 일본·소련·중공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에 있다. 앞서 말한 복지향상을 위한 경제개발인가, 아니면 냉전적 대립의 반복인가라는 문제도 사실 이들의 반응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일본은 이미 누차에 걸쳐 「말라카」해협이 그들의 유조선의 통로임을 들어 「사활선」이라고 선언했고, EC 및 미국도 이 주장을 묵시적으로 승인했다. 이것은 최근 일본이 월남 및 월맹의 전후복구사업에 거액의 경제원조를 제안한 것과 함께 매우 깊은 의미를 함축하는 것이다.
이미 인도양에 대규모 해군기지를 확보하고 있는 소련으로서는 특히 월맹의 향배에 대해 중공과 경합적인 입장에 있는 만큼 산술적인 이해이상의 적극개입이 예견되며, 이것은 중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로써도 알 수 있듯이 「이데올로기」적 흑백분쟁이 「어떤 해결」을 봤다고 해서 분쟁의 불씨 자체가 소멸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가이익을 기본척도로 삼는 항쟁시대가 얼마나 다난한 것인가는 지난 수세기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을 때에야만 우리는 비로소 국가이성과 국가이익의 괴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며 다음 시대의 후손들에게 영광스러운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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