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운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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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계전후사는 이제 새로운 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단국 독일의 운명이 신경지를 맞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 한다. 동·서 양독은 이른바 「기본 조약」에 따라 멀지않아 『대사 아닌 대사』를 교환하게 된다. 이것은 분단된 단일 민족의 분단된 평화를 상징하는 세계사의 한 선례가 될 것이다.
서명과 조인만이 남은 「기본 조약」에 따르면 양독은 국제법상 서로를 승인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따라서 이들은 상호 긍정적인 관계의 정상화를 이룩할 것이다. 당연히 외교 특권을 가진 전권 대사도 교환된다. 그러나 「외국」에 파견하는 정확한 의미의 대사는 아니며, 다만 두개의 독일이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권 대표부의 사절이다.
「브란트」 수상의 말마따나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특수한 유형」이다. 양독은 서로 외국도, 그렇다고 하나의 통합된 국가도 아닌, 실로 「이상한 나라」가 된 셈이다.
그러나 「브란트」 수상은 아직도 그 본질적인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독일 민족의 단일성』은 결코 저버리지 않으려 한다. 그런 대전제를 언제나 정치적 「뉘앙스」로 남겨 놓고 있다. 하지만 동독은 『서로가 매우 상이한, 따라서 결합될 수 없는 사회 제도를 가진 독립된 2개의 국가임』을 주장한다. 양독은 서로 외국일 수는 있어도, 통일 독일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한계는 비단 분단 독일의 경우만은 아닐 것 같다. 모든 분단국들의 뼈아픈 역사가 강국 「이데올로기」의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보면 쉽게 그 차이를 초월하기는 힘든다. 『다른 체제를 초월한다』는 말이 끝끝내 환상적인 「이미지」를 갖는 것은 바로 그런 한계 때문이다.
독일은 또 다른 분단국과는 달리, 골치 아픈 짐을 하나 끌어안고 있다. 「베를린」 문제이다. 동·서 양독은 향후 「베를린」의 지위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것은 미·소·불·영 등 4강의 이해가 얽혀 있는 때문이다.
결국 분단국의 운명 속에서 강국의 「에고이즘」을 씻어 내기는 어렵다. 독일의 경우를 보아도 소련이 속마음으로 통독을 원하고 있는지는 궁금하다. 그런 「내심」은 「프랑스」도, 그리고 또 그 주변의 군소국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이 독일을 통일 아닌 현상 고착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더구나 독일은 「유럽」의 「밸런스」 (균형)를 유지하는 「나토」 기구와 「바르샤바」 기구 사이에서 절충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독일로서는 성가시고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은 남이 억지로 떠맡긴 역할이다. 「통일」은 실로 멀고 아득한 환상으로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독일의 이런 상황은 세계사의 상징적인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그것이 「슬픈 선례」 라는 표현도 그래서 가능하다.
작 일자 본지에 실린 DPA 통신 「앤드루·우드」 기자의 견해도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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