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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구층탑 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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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종교는 난세에 흔히 잘 일어나고, 또 유행된다. 불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찰과 탑 파는 나라가 팽창하고 있을 때나 성세에 더 건립된다.
경주 둘레에 지금까지 자취를 남기고 있는 사찰만 손꼽아도 60개가 넘는다. 그리고 이 모두가 삼국통일시대에 세워졌다. 조금도 우연은 아니다. 황룡사도 예외는 아니다.
황룡사는 진흥왕 14년(553년)에 왕명에 의해 착수되고 선덕여왕 13년(644년)에 완성되었다. 90년의 오랜 세월을 두고 건조된 것이다. 당초에 이 황룡사의 금당에는 율거의 유명한 벽화가 있었다한다.
그 화면의 노송에 까치들이 날아와 앉으려다 가는 떨어지곤 했다. 후에 사승이 단청을 새로 하자 새들이 다시는 날아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 신라통일 이후의 국찰이던 황룡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탑이 있었다.
그 탑 지도 1천1백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지난 66년에 비로소 햇빛을 보게 되었다가 최근에야 겨우 판독되었다.
여기 의하면 신라 삼보의 하나로 손꼽히던 이 구층탑은 자장법사가 당에서 돌아와서 선덕왕에게 청하여 만들기로 되었다 한다.
이리하여 백제의 공장 아비지를 청하고 춘추공의 아버지인 이간용춘이 감독하여 소장 2백 명이 동원되어 착공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전설이 얽혀 있다.
찰주를 세우는 날, 백제 공장은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었다. 그는 마음의 동요를 억제할 길이 없어 공사를 중지시켰다.
그러자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고 사방이 캄캄해지더니 한 노승과 한 장사가 나타나서 찰주를 세워 놓고 홀연히 사라졌다.
아비지는 이것을 보고 회개하고 공사를 계속하여 드디어 높이 2백 25척이나 되는 구층탑을 완공시켰다는 전설이 있다.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흘려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황룡사를 국찰로 여기고 또 구층탑을 삼보의 하나로 소중히 여기던 신라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 전설도 만들어낸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탑 지에도『삼한이편(일가) 군신안락 지금뢰지』란 말이 나온다. 바로 이런데 건탑의 뜻이 있었다. 곧 황수영 박물관장의 풀이대로『통일의 태동을 배경으로 거국적인 염원을 반영』한 것이 황룡사 구층탑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 탑이 그 후 세 차례나 중건되었다는 사실은 옛 신라사람들이 통일국가의 하나의 귀중한 상징처럼 여겼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런 탑지가 통일에의 의지로 결속되어가며 있는 최근에 햇빛을 보게 됐다는데 뭣인가 의미를 안겨 주고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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