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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인협회 광주 「세미나」|현대시와 독자|왜 읽히지 않는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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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시는 왜 독자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가. 즉 독자는 왜 현대시를 읽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현대시가 당면하고 있는, 앞으로 타개해야 할 가장 심각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앞으로 문학의 어떤 「장르」보다 대중에게 괴리되어 있다는 것은 시의 특성으로 보아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쓰기에 따라서 혹은 읽기에 따라서 시와 독자가 보다 친근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한 시인들의 모임이 지난 8일 전남 광주시 피정「센터」에서 마련되었다. 한국시인협회(회장 박목월) 가 매년 마련하는 이 시인들의 모임의 금년도 주제는 『현대시와 독자』-. 이 모임에는 전국으로부터 70여명의 시인들이 참가, 조병화 김광림 이승훈씨의 주제발표를 들은 후 현대시와 독자와의 괴리 현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진지하고 열띤 견해를 폈다.
조병화씨는 현대시를 「읽히는 시」와 「읽히지 않는 시」로 구분하고 우리 나라의 경우 「읽히지 않는 시」가 주로 주지성이 강한 「모더니즘」으로 설명되면서 이것을 흔히 난해 시라고 하여 현대시의 주류인양 착각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쓴 글을, 뭐가 뭔지도 모르고 추켜 올리며 난해 시를 이해 시로 둔갑시키는 풍조가 만연하게 된 것이 우리 현대시가 독자를 잃게 된 계기였다는 것이다.
조씨는 현대시가 보다 「읽히는 시」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읽혀야 하고 이해되어야 하고 의미전달이 돼야하고 내용전달이 됨으로써 그곳에 공명과 공감, 시로서의 감격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조씨의 견해는 정재완씨 등 몇몇 참가 시인으로부터 『쉽다는 것 한가지만으로 독자와 영합할 수 있느냐』는 반론을 받았으나 조씨는 우선 읽혀서 그로써 우리 정신의 광장을 넓히는 「공존의 악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광림씨는 육당·소월·영랑 등의 시는 독자를 위한 시였다고 할 수 있겠으나 현대시의 독자는 문학의 다른 분야나 다른 예술분야에 비해 뚜렷한 성격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시의 시인은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시를 쓰는 선배나 동료를 의식하면서 그들을 향해 이른바 「시단 시」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시인의 자아와 대중의 욕구가 잘 연결될 수 없으므로 시의 진정한 독자는 시인이나 시를 쓰려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만약 현실적인 시간 위에서 시인과 대중이 연결되었다면 그것은 참다운 시인의 자아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씨는 시인이 독자를 획득하기 위해 자아에의 추구 없이 성급히 대중과 타협한다는 것은 자아의 망각으로서 그러한 시인의 작품은 생명을 지니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시인의 자아와 대중의 욕구와의 통일적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현대시가 뚫고 나가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김광림씨의 이러한 현대시의 예술적 기능에 대해 이승훈씨는 그 사회적 기능을 설명하면서 시와 독자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시의 본질보다 기능에 치중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 시가 한 시대의 문학적 「장르」로서 그 시대를 살고있는 인간들의 정신에 유형무형의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문학독자를 대체로 현실적 독자와 잠재적 독자로 양분하면서 문화적 수준이 낮은 나라일수록 현실적 독자, 즉 대중을 위해 쓴다는 노릇은, 그리고 그것을 지상목표로 삼는다는 노릇은 문학의 자살이나 다름없다고 단정했다. 따라서 진정으로 대중을 위하는 시란 대중에게 영합하여 즐거움을 준다든가 위안을 주는 시가 아니라 시대의 배면에 응축되어 있는 상황의 덩어리, 감춰진 비밀을 직시하고 자극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충격적 진실, 그들이 놓치고 있는 주체성을 다시 자각케 하는 시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이씨는 상품문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가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 시대에 치욕이 아니라 긍지가 돼야한다고 말하여 주목을 끌었는데 김종해씨 등 몇몇 참가시인들도 『현대시가 독자로부터 소외되었다고 하지만 정작 소외된 것은 시쪽이 아니라 독자쪽』이라고 말하여 이씨의 견해에 동조했다.
이날의 「세미나」는 대체로 지금과 같은 여전이나 상황이 시인에게 불리하다는데로 집약되었으나 이러한 상황에 대해 시인이 가야할 자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상반된 견해가 제기되었다. 신동집씨는 『시인은 언제까지고 외롭지만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장호씨는 『이런 상황일수록 시인들에게 위기를 뚫고 나가는 기능이 발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희진씨는 시인은 고독하다는 따위의 폐쇄의식은 납득이 가지 않으며 시의 사회적 기능, 예술적 기능을 따지는 것도 시인 자신을 긍지에 몰아 넣을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인의 임무는 좋은 시를 남기는 일일뿐이라고 주장했다. 범대순·손광은씨 등 시인들은 현대시가 비관적이라는 견해는 보였으나 시대성에 대해 그때그때 적합한 반응으로서 대처해야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남수씨는 시가 전달에 치중하다보면 타협하게 되고 표현에 치중하다보면 독자와의 단절을 초래하게 되는데 결국 시인의 자세란 독자를 의식하든 안 하든 자기가 느낀 것을 힘껏 쓰는 길만이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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