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아 공영권적 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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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중공의 수교는 국제정치사에 있어서 신기원을 극하는 것이다. 이 두개 「아시아」의 거인국은 2차대전후 지금까지 전쟁 상태에 놓여있었고 서로들 상대를 보기를 가장 위험한 가장 적국으로 보아왔다. 이 양국간 적대 관계의 지속은 50년대는 미·일 동맹과 중·소 동맹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었다. 60연대이후 중·소 관계가 험악해지고, 또 미·소가 평화공존관계를 형성·유지하면서 중공에 대한 공동 포위망을 펴나가게 되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미국이 중공의 침략과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중공을 포위하고 고립시키는 정책을 지속하고 또 이 정책을 지속하는데 있어서 미·일 안보 체제를 주축으로 삼아왔으므로 일·중공은 여전히 불화·대립을 지속했다.
작년부터 시작된 미·중공간 화해 접근 경향은 미·소 양극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고 세계는 이른바 5강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정세 대변화는 마침내 일·중공으로 하여금 전쟁 상태를 종결짓게 하고 외교관계를 설정케 했을 뿐 더러 진일보하여 적극적인 우호친선을 지향케 하였다.
세계 대세로 보아 일·중공 수교는 불가피 또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중공 수교는 그「템포」가 예상외로 빨랐을 뿐더러 그 내용도 단순한 국교 정상화의 범위를 벗어나「사실상의 불가침묵계」를 하고「반 동맹 관계」를 형성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데 국제 정치상 각별히 주목치 않으면 안될 국면이 있다.
중공의 입장에서 보면 수교를 하는데 선 일본 후 미국의「코스」를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일본의 입장으로 보면 먼저 소련과 강화 조약을 체결해 놓고 그 다음에 중공과 국교정상화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중공이 상호 수교의 길을 먼저 택했다는 것은 미·소 양극체제하에서 형성·유지되었던 동「아시아」질서가 무너졌고, 4강의 세력 균형하에 동「아시아」 의 질서가 형성·안정되기 이전의 과도기에 있어서 일·중공이 긴밀히 제휴하여 동「아시아」 의 정세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것으로 보여진다.
「아시아」 의 거인국인 일본과 중공은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 에서 미·소 양 대국의 세력을 축출하고「아시아인의 아시아」를 구현해 보려는 생각을 가져왔다. 양국은 이 공통된 염원을 달성키 위해 이념과 제도의 차이를 넘어서 밀착하게 된 것이다. 북경 정상회담후의 공동 성명은 말하기를『양국은 각각「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패권(헤게모니)을 추구치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양국이 합작 제휴해서 공동히 패권을 추구하는 것은 배제치 않는다. 양국이 제각기의 입장에서 패권을 추구하게 되면 충돌이 필요적인 것이므로 두 나라가 합의하고 협력해서 동 「아시아」의 질서를 형성하자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아시아인의 아시아」는 일본이 2차 대전 당시 이른바「대동아 공영권」을 수립하는데 내세웠던「캐치·프레이즈」였다. 그 「대동아 공영권」이란 동「아시아」서 민족을 일본의 노예로 만들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2차대전 전 세대에 속하는 사람들이라면 「아시아인의 아시아」란 말만 들어도 몸에 소름이 떠오를 것이다. 물론 일본이 전전에 내세웠던「아시아인의 아시아」와 오늘날 일·중공이 공통히 추구코자 하는「아시아인의 아시아」는 그 내용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양자 공히 대국주의의 입장에서 미·소 양대 세력이 물러가면,「아시아」의 약소국의 주권과 독립을 짓밟고도 남는 국가이기 대문에「아시아」 제국의 입장에서는 심심한 설계를 필요로 한다.
일·중공 수교는 중공을 최대의 가상 적국으로 삼았던 미·일 안보 조약의 사문화를 촉구한다. 미·일 안보 조약의 사문화는 조약중의「한국 조항」에 의해서 뒷받침을 받던, 한국의 안전 보장이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51년 ?항 조약 성립 후 지금까지 미국의 대동「아시아」 정책은 미·일 안보 체제를 주축으로 하여왔었다.
미·일 안보 체제가 유명무실해져 가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서 미국은 대동「아시아」정책을 근본적으로 시정치 않으면 안될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는 미국이 신 정책을 구상하는데 한국의 지위와 안보를 강화해주는 방향으로 나가주기를 염원한다.
일·중공 합작에 의한 신판「대동아 공영권」형성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미국도 소련도 형태의 추이를 날카로이 주시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과 중공의 야망이 쉽게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의 장래행동에 관한 불확실성이 급전하는「아시아」정세의 변화 방향에 대한 측정을 곤란케하고 있음을 솔직해 시인해야 한다. 2차 대전 때 일본은 미·소·영·중 4대 강국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고 싸웠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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