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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계엄령 선포 아리송한 여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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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선 개헌추진과「테러」가 악순환을 거듭하던 필리핀에서 끝내 헌정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빚었다. 「마르코스」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마르코스」는 처음 계엄령을 내릴 때에는 이유조차 밝히지 않다가 하루가 지난 다음에야 『공산주의자들의 무장봉기를 막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필리핀」에는 현재 1만여 명의 신인민군이 모택동 식「게릴라」전을 벌이고 있으며 무장되지 않은 자까지 합하면 10만 명에 가까운 방대한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의 공산세력들이 상당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 누구나 수긍하는 일이다.
54년 고「막사이사이」대통령에 의해 격 멸된「후크」단은 그 후에도 완전히 뿌리뽑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일단 거세되었던 공산주의자들이 어떻게 재기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헌정을 중단할 정도로 심각한 것인가에 있다.
대부분의「업저버」들이 바로 이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사실「마르코스」가 헌정중단의 모험 극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풍설은 오래 전부터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대통령직을 한번이상 하지 않는다는「필리핀」의 관례를 깨고 69년 재선된 후「마르코스」는 3선 공작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심복들은 현 의회에서의 개헌이 불가능해지자 부인인「이멜다」여사를 내세우려 책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공작이 국민들의 여론 앞에 난항을 거듭하자 현재의 의회 외에 따로 제헌국회를 만들어「옥상 옥」을 지었다. 제헌국회는 이른바 내각책임제헌법을 제정, 「마르코스」가 3선할 수 있는 길을 터 주었다.
이것은「법의 조문」에만 충실하면 법의 정신은 손상되어도 좋다는 해괴한 준법정신의 본보기였다. 집권층의 이와 같은 변칙적 정국운영이 전반적인 정계불안을 낳은 것은 당연한 결과. 야당은 집권자의「입법취지에 어긋나는 합법행위」에 대항하기 위해 극한적인 투쟁방법을 채택하게된 것이다.
작년에는 야당인 자유당의 집회에 폭탄투척사건이 있었고 올해 7월 이후에만도 20여건의 테러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21일「마닐라」의 교수·대학생「데모」대는 이와 같은「테러」가 집권층의 「조작극」이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계엄령선포의 도화선이 되었던「폰센릴레」국방장관 암살미수사건도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그 전말이 아리송해진다. 일부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마르코스」가 내세운 계엄선포의 이유에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공산분자들의 책동을 분쇄하기 위한』계엄령이 선포된 후 불어닥친 검거선풍에서 현재 20여명의 정계인사가 체포되었지만 그 중에 공산주의자는 한 명도 없는 것이다. 자유당 당수 겸 장원의원이며「마르코스」의 가장 강력한 정적인「아키노」씨가 검거 제1호였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의문을 더욱 짙게 한다.
아키노씨에 대한 매카디 적 탄압의 시도는 지난 16일에도 있었다.「마르코스」자신이 직접 발표한 담화에서「아키노」씨가 공산당과 연합전선을 벌이려한다고 공격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담화는「필리핀」의 반공지식인들조차 완전히 묵살해버렸다.
계엄법을 처음 채택한 것은 1849년「프랑스」. 그러나『헌법이 인정하는 헌정중단의 유일한 외나무다리』인 이 법은 거의 모두가 집권자의 편의적 수단으로 남용되기만 했었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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