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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구차 7인 중 군인 모두 퇴출 … 당료 둘만 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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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11년 12월 30일 최고사령관을 시작으로 권력장악에 나선 김정은의 권력 공고화 작업은 숙청과 인사를 통해 이뤄졌다.

 1960년대 말~70년대 초 김정일의 후계자 확정 과정과 비슷하다. 정부 당국자는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 특별한 이유 없이 북한의 인사가 수시로 이뤄지고 있다”며 “김정일 시대에 핵심 지위를 누렸던 인물들은 대부분 실각한 상태”라고 말했다.

 인물 교체는 노동당보다는 군부에서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이들이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 왼쪽에서 호위했던 군부 4인방이다. 이영호 군 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이상 당시 직책)이 그들이다. 당시 호위무사란 별칭을 얻은 이들의 역할은 김정은 시대에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김정은 시대 들어 몰락의 길을 걸었다.

  장성택의 실각설은 김정일 운구차의 왼쪽에 섰던 4인방에 이어 오른쪽으로도 숙청이 이어지는 신호탄이란 분석이 나온다. 당시 오른쪽에는 김정은, 장성택, 김기남 당비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섰다. 김정은을 제외하곤 김기남 비서나 최태복 의장만 남았다. 군 인사들은 모조리 퇴출됐고, 당 사람들만 살아남은 셈이다. 하지만 김 비서와 최 의장은 각각 83세와 82세의 고령이어서 이들도 조만간 교체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이 2인자로 불리던 장성택까지 손을 본 것은 권력장악용 마지막 숙청으로 풀이된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평양에선 “새파랗게 젊은 김정은보다 고모 김경희가 실세”라는 말이 나돌곤 했다고 한다. 따라서 남편인 장성택의 실각설은 김경희에게도 치명상을 입힐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군 관계자는 “최근 북한 군에 이상동향이 있었다”며 “대남도발 때문이 아니라 숙청으로 인한 내부 분란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그간 숙청과 세대교체를 통해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왔다. 취임 이후 2년간 인민무력부장을 3번(김영춘→김정각→김격식→장정남)이나 갈아치웠다. 김일성 시대 46년간 5명, 김정일 시대 17년간 3명만 이 자리를 맡았었던 것과 비교가 된다. 김정은 집권 2년 동안 인민무력부장은 평균 6개월의 재임기간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총참모장 역시 이영호→현영철→김격식→이영길로 이어지며 단명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최용해 총정치국장을 제외하곤 인민무력부장, 총참모장, 보위사령관 등 군부 핵심 직책이 수시로 교체됐다. 장성택과 운구차 왼쪽 4인방은 물론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을 이끌며 승승장구하던 대표적인 강경파 김격식 역시 김정은 시대 들어 뒤로 물러났다. 국방부 당국자는 “최용해는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시절 동료였던 최현의 아들”이라며 “북한에서 빨치산은 성골(聖骨)로 꼽히는 만큼 이를 대표하는 인물인 최용해를 제외하곤 모두 바뀌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합참 관계자도 “김정은은 집권 2년 동안 일선 군단장도 44%를 교체했다”고 전했다.

 정부 당국자는 “권력자는 자기가 집권하기 이전의 권력자를 부정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젊은 김정은은 아버지를 부정하기 어려운 만큼 잦은 인사와 세대교체를 통해 자신에게 충성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정은은 지난 1월 1964년 이전에 출생한 인물들은 노동당 과장급 직위에 새로 임명하지 못하도록 하는 지시도 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군에 이어 노동당과 내각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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