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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공해 배상 받기 쉬워질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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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산업공해로 손해를 입었다는 인과관계의 입증은 개연성의 증명만으로 족하다』는 기업의 공해배상책임이론(71년6월28일 서울민사지법판결)이 2심인 서울고법의 판결에서도 채택되어 주목을 끌고있다.
일본 등 외국의 산업공해에 대한 기업의 배상책임이론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 학설은 민법(750조)의 일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경우와 구별, 원고측의 입증책임을 크게 완화하고 있기 때문에 소시민들의 공해피해를 보다 쉽게 배상 받을 수 있다는데 바탕을 두고있는 것이다.
타인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재산·정신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나 피고측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불법행위가 있었다는 사실과 이 때문에 손해를 입었다는 인과관계의 입증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원고측(피해자)에서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이 판례와 통설로 되어있다.
따라서 산업공해로 인한 불법행위에 있어서도 피해자측에 공해의 원인물질을 밝혀내고 그로 인해 피해가 있었다는 자연과학적인 엄격한 인과관계의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없어 사실상 소시민들의 손해 배상청구권을 빼앗는 결과가 되어 공해로 손해를 입었다는 개연성 정도의 증명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 기업의 공해배상책임이론의 핵심을 이루고있다.
사실상 고층건물에 의한 햇빛 방해와 소음·진동 등으로 인한 피해에 있어서는 비교적 인과관계의 입증이 용이할 수 있으나 수질오염·대기오염 등에 의한 공해는 피해의 원인규명이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의 경우 사일시 공해소송(대기오염) 부산 「이따이·이따이」(아프다 아프다) 병 소송(이상 하천 오탁) 태본과 신석수보병 소송 등 4대 공해소송에 있어서도 피고측의 공장에서 발생한 공해의 원인물질이 피해자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인과관계의 입증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었다.
일본 「와세다」대학의 횡산적 법학 교수와 일부학자들은 『공해 피해자는 공해의 원인물질과 배상의무자를 밝힐 정도의 입증(개연성 증명)을 하면 되고 이를 부정 할 책임은 피고측(기업)에 있다』고 주장 이 같은 이론을 「입증책임의 전환」이라고 풀이했다.
이 학설의 근거는 ①피해자는 쉬운 공해의 조사라도 막대한 비용을 조달할 수 없고 ②가해자의 공장에 출입하지 않고서는 원인을 밝힐 수 없는데도 기업은 기업기술의 비공개를 이유로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③공적공해관측기관이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세밀한 조사자료를 모아두지 않고 있다 ④ 공해원인의 탐지기술이 공해발생의 공장기술의 개발에 따르지 못하는 점 ⑤ 가해자의 공장이 어떤 물질, 「에네르기」를 발산하고 있는 이상 그 무해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의무라는 점등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 같은 이론적 바탕이외에도 피해자에게 인과관계의 세밀한 부분까지 엄격한 자연과학적인 입증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의 손해배상 청구권의 박탈과 소송을 장기화시켜 원·피고간의 화해로 배상액을 낮게 하는 등 법적 책임을 불명확하게 할 염려가 짙다는 사회 현실적 배경에 놓여있기도 한 것이다.
실제로 70년7월 동양「시멘트」 삼척공장 주변의 주민 1천여명이 1억여원에 달하는 공해소송을 냈다가 소취하를 했었는데 막대한 비용의 염출과 인과관계의 입증이 힘들기 때문에 기업측과 화해한 것으로 추측됐었다.
이번 판결의 재판장 겸 주심인 서울고법 김태현 부장판사는 『공해소송에 있어 개연성을 입증하면 족하다는 이론은 이른바 「거증책임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의 입증으로 사실상의 추정을 하자는데 지나지 않는다』고 풀이, 손해가 기업측의 공해에 원인이 있다는 개연성의 정도로 재판관이 인과관계를 추인하는 것을 인정하고 기업측에 반증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 같은 인과관계에 대한 개연성의 구체적 모습은 ▲피해의 원인물질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기업공장에서 원인물질이 배출되는 경우 원인물질의 경로가 모순 없이 설명되면 인과관계의 입증이 있다. ▲원인물질이 분명치 않더라도 공장의 가동과 동시에 피해가 발생하고 가동의 일시정지로 피해가 그치는 경우는 인과관계가 긍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판결에서는 『기업공해로 손해가 있었다는 개연성만 입증되면 당해 기업의 원인물질배출이외의 다른 원인이 경합하더라도 당해 기업은 전 손해를 배상해야한다』고 판시, 복합적인 공해원인에 대해서도 책임한계를 명백히 했다.
이에 따라 이사건의 원고측은 ⓛ과수원에 피해를 준 원인이 아황산「개스」였고 ②피고인 한국전력 울산화력발전소에서 「개스·터빈」 10개를 가동하기 위해 「디젤」과 「나프타」 연료를 사용, 아황산「개스」를 방출해 온 사실 ③피고공장과 원고과수원의 거리(2백m) 및 풍향 등으로 보아 공장에서 배출되는 아황산「개스」가 과수원에 자연스럽게 도달 할 수 있다는 점 ④과수원의 관리상태는 양호했다는 점 ⑤공장의 가동을 현저히 적게 한 후(71년 이후)의 과실수확은 전혀 없다가 평년작의 5분의 1이나 있었던 점을 입증함으로써 복잡하고도 어려운 자연과학적인 인과관계의 증명을 대신했고 피고측은 이에 대한 충분한 반증을 제시 못해 원고승소판결이 난 것이다.
주민들은 공동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어느 정도까지는 이웃의 활동이나 여건을 참아야 하는데(민법규정의 수인의무) 기업의 공해원인 물질배출이 이에 해당하는지의 여부가 관건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기준(위법성 여부)은 ▲침해행위의 사회적 유용성(공익성) ▲당해 지구의 현실적 토지이용상황(지역성) ▲토지이용의 선후관계 ▲가해자의 피해방지 조처 태만 ▲가해행위의 계속성 ▲피해자의 특수사정 등으로 한계를 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피고측의 발전업무는 공익성이 있고 공장이 울산공업지대에 위치하나 과수원의 토지는 원고측이 먼저 이용해왔고, 피고는 가해방지조처를 태만히 했으며 가해행위가 계속성이 있는 반면 피해의 정도가 너무 심하여 피고의 가해행위는 수인한도를 훨씬 넘어 위법행위로 판시된 것이다. 이 같이 공해배상소송에 지름길을 터놓은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유지될는지의 여부에 대해 법조계는 물론 일반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는 것이다. <심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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