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도적인 비동맹 중립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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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뉴델리=성병욱 특파원】인도는 47년 8월 15일 독립이래 「네루」의 외교노선에 따라 비동맹 중립정책을 취해왔다. 이 비동맹정책은 「판치시리」로 알려진 평화5원칙과 반식민주의를 그 적극적인 내용으로 한다. 이른바 평화5원칙은 ①영토보전과 주권의 상호존중 ②영토 불가침 ③국내문제에 대한 상호불간섭 ④평등호혜 ⑤평화공존을 말한다.
중립노선을 추진하면서도 「네루」는 공화국으로 영 연방에 잔류했었다. 이러한 초기 인도의 대외정책은 인도의 국가이익과 이상을 잘 반영한 것 같다. 영 연방에 잔류함으로써 심각한 국제긴장의 시기에 고립의 위험을 피할 수 있었고 비동맹·평화공존 정책을 취했기에 국제분쟁에서 독자적 태도를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인도는 냉전이란 양극체제의 틈새에서 손쉽게 강대국에 상응한 위신과 발언권을 획득했다. 오랜 기간 양대 진영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끌어들여 번영에의 길을 터놓은 것이다.
이러한 점은 인도가 추구해온 비동맹 중립주의의 강점으로 평가된다.
미·소가 평화공존을 상호확인 할 때까지 인도의 국제정치상의 향배는 세계사의 운명을 가름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중요성을 지녔기 때문에 미·소는 원조나 차관제공에 인색할 수 없었다.
이 원조경쟁에서 미국은 농산물과 소비재 부문에 치중한 반면 소련은 60년대 중반까지 생산재시설 부문에 역점을 두었다.
67년 6월까지 미국은 정부간 원조만 80억 달러에 이르러 원조액으로는 소련을 훨씬 능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장건설에 치중한 소련의 원조만이 지금까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아직도 큰 소련의 영향력>
연 생산 4백만t의 「레일」과 강철자재를 생산하는 「질라이」제철이 그 대표적인 것으로 아직도 소련인 고문단이 남아있다.
미·소뿐 아니라「낭가르」공업단지 건설에는 지금도 영국·「프랑스」·「캐나다」·서독·일본 등 10개국의 대 인도 원조단이 참여하고 있다.
평화공존을 내세우는 비동맹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캐슈미르」문제와 「뱅글라데쉬」분리독립을 놓고 분쟁을 계속해온 「파키스탄」이나 62년과 67년 국경분쟁을 한 중공에 대해서는 평화공존만을 고수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인도에서는 중공에 대한 적대감정이 가시지 않았다. 「뉴델리」대학의 벽에는 『중국 놈 죽이라』는 구호가 여기저기 쓰여있다. 62년 인도·중국 국경전쟁에서 참패하고 67년 다시 일었던 분쟁으로 말미암아 대 중공 평화공존「무드」는 송두리째 깨졌던 것이다.
그 후 중공·「파키스탄」접근을 떼어놓기 위해 인도는 중공접근을 조심스럽게 시도했으나 인·「파」전쟁 때 중공이「파키스탄」을 지지해 양측의 관계개선 희망은 당분간 유예되었다. 요즈음 인도는 또다시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탐색하고 있다는 얘기가 이곳에서 나돌고 있다. 이러한 탐색과는 별도로 중공봉쇄를 위해 실리적 입장에서 자유진영과의 협력을 꾀하면서 소련·「네팔」·「아프가니스탄」·「뱅글라데쉬」와 지역협력체제 구성이 모색되고 있다.

<깨진 대 중공 평화공존>
작년 말 인도·소련간에 체결된 상호 우호협력조약이나 금년 3월의 인도·「뱅글라데쉬」간의 비슷한 내용의 조약은 모두 인도의 비동맹정책의 변색을 나타낸 것으로 냉전시대의 양극체제가 다원화로 이행함에 따라 비동맹중립의 내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자체 한계를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인·중공전쟁 이후 인도는 국방비를 배가하여 현재 정규병력 92만5천, 국경보안대 10만, 도합 1백만명이 넘는 대군을 유지하고 있다.
국방비가 총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를 상회한다. 67년 미국군사사절단이 철수한 이래 인도군은 주로 소련장비로 무장했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인도에서의 중공·소련 대립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인도에는 「모스크바」계의 CPI와 중공계의 CPIM 등 두 개의 공산당이 사사건건 대립하는 인도판 중공·소련 대립도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파」전쟁 이후「파키스탄」을 지원한 미국의 인기가 여지없이 떨어지긴 했으나 이곳에서 미·소가 대립한다는 인상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인도는 국내적으로 의회민주주의정치와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지향한다.
71년 선거의 총유권자가 2억7천만이었다니 인도를『세계 최대의 민주주의』라고 부름직도 하다.
현재의 하원은 의석 5백15석 중 집권당인 「인디라·간디」수상의 국민회의당 좌파가 3백50석을 차지해 3분의 2를 상회한다.

<소극적 사회주의 경제>
인도의 국회는「아시아」에서 서구식 의회정치를 본받은 가운데 가장 훌륭하게 정착됐다는 평판이 있다.
물론 70%가 넘는 문맹자, 아직도 뿌리 깊숙이 남아있는 「카스트」제도로 인해 대중민주주의의 바탕은 취약하지만 지식인·지방유지의 의사가 정치의 향방을 잡아가 일종의 제한선거제 하에서와 같은 정치현실을 보여준다.
경제에 있어서 사회주의 건설을 지향한다지만 개인소유의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는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투자로 생긴 생산수단을 사회화하며, 유통과정의 통제로 소득평준화를 기한다는 소극적인 정책을 취하고 있다. 과거 20년간 실질국민소득증가율이 1인당 연간 1.4%란 낮은 수준이어서 정부정책도 오히려 자유화로 방향을 조정해 가고 있다.
경제개발의 우선순위는 첫째가 중공업진흥이고, 다음이 식량증산이다. 그래서 외국에 화차를 팔고 「제트」기를 만드는 인도지만 종이·비누·성냥 등 일용품이 심히 모자라는 기현상을 빚고 있다. 국가의 운명을 미래에 걸고 오늘의 고통을 참는다는 뿌리깊은 「힌두」사상의 발현이라고나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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