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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를 삼킨 수마|청평서 한강하류까지...물난리의 현장 공중 르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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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관상대 관측사상 최고를 기록한 평균 4백50mm의 집중폭우는 서울·경기지방을 너무나도 무참하게 짓밟았다. 남한강까지 범람하자 여주.·양평까지 침수, 한강유역의 피해는 더욱 혹심하다. 수해가 심한 일부지역은 교통·통신두절이 되자 행정력까지 마비, 인명피해·재산피해를 알리기는커녕, 양평의 경우는 SOS를 발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침수되고 말았다. 하룻밤 사이에 짓밟혀버린 광역한 한강유역의 피해를 대충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청평에서부터 한강하류(김포)까지를 공중「르포」했다. 20일 정오 본사 HL-1027기로 고도 5백m 상공에서 내려다본 한강유역의 침수피해상황은 다음과 같다.

<목만 겨우 내놓은 전주>
청평「댐」이 24개의 수문(높이3lm) 중 20개의 수문이 4·5m높이로 개문 되면 초당 4천4백20t의 물이 북한강에 쏟아진다. 1분에 26만5천2백t이란 엄청난 물이 방류된 데다 범람한 남한강물이 양수리에서 합쳐지자 탁류는 순식간에 여주읍을 덮쳤다. 56평방km에 4천여 호를 헤아리는 여주읍은 20일 정오 현재 완전고립, 중심가를 제외한 시가 절반 가량이 침수됐다.
양평에서 여주로 뻗은 국도가 네 동강이가 났다. 여주서 이천으로 빠지는 차도도 물에 잠겨 약2백m가량은 전봇대 모가지만 내놓고 늘어서 있었다.
여주가 침수되자 그 아래 가뜩이나 얕은 양평읍은 온 읍내가 물에 잠겨버렸다. 몽땅 수중도시화 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처참했다. 수재민 수용에 유일한 곳이며 대피소로 되어있는 국민학교조차 물에 잠겨 「포풀러」나무로 둘러싸인 운동장엔 「보트」가 헤엄치고 있었다. 밤사이에 온통 물이 잠겨 잠자다가 놀란 시민들은 2층집 지붕 위에 세간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구조의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팔당에서 양평을 향해 한강을 끼고 도는 4km의 국도도 탁류에 잠겨버렸고 여주로 빠지는 길목도 막혀버린 약 3만의 양평 읍민은 대피할 곳이란 북쪽의 산밖에 없었다.
38평방km 면적에 5천호를 헤아리는 양평읍은 물에 잠긴 지붕이나마 보이는 것은 2층집과 고지대의 지붕 등 헤아릴 수 있을 정도. 나머지는 송두리째 잠겨버렸다.
행정력이 마비된데다 통신조차 두절, 재해대책본부도 양평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아직 모르고 있다.
그 아래 양서·양수리 등도 탁류에 잠겨 지역을 식별할 수가 없는 상태.

<탁류 속에 식수기근도>
양평·양서의 이재민들은 언덕바지의 숲 속과 도로변에 즐비했다. 침수 안 된 산밑의 우물가에 늘어선 물통의 대열과 나룻배로 실어 나르는 「드럼」통의 식수수송으로 보아 탁류 속의 식수난이 심각한 것 같다. 양수리 앞 모래 섬도 자취를 감추었다. 도도히 흐르는 탁류의 한복판, 둥근 멍석만하게 남은 농장 마당에는 주인과 막사도 잃어버린 젖소 20여 마리가 점점 불어나는 수마 앞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장어 메기 쏘가리 등 매운탕 먹으러 곧잘 다녔던 팔당의 유원지도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 건너편 유람선 「방갈로」도 떠내려 가버렸고 살림을 잃어버린 아낙네들은 겨우 건진 옷가지를 바위 위에서 널어 말리고 있었다.

<신앙촌도 완전히 삼켜>
탁류는 팔당연변을 쓸고 덕소를 강타. 박태선 장로가 필생의 사업으로 이룩한 이른바 지상의 낙원이라던 제2의 신앙촌도 유린됐다. 「시온」 재단의 원동력이라고 과시했던 제철공장·방직공장·유지 공장 등이 모두 2층까지 물에 잠겼다. 잠긴 방직공장에서는 「비닐」과 섬유뭉치가 물거품이나 계란껍질처럼 하얗게 떠내려가고.
그 건너 편 모래사장 신앙촌 전용의 유원지도 탁류 속에 잠겨버려 그들의 지상의 천국은 폐허보다도 황량했다.

<지붕만 떠있는 천호동>
「워커힐」에서 내려다보면 한강의 강폭이 얼마나 넓은가를 짐작할 수 있다. 거기다 천호동까지를 합쳐서 조감하면 그 끝은 놀에 잠겨있다.
줄기찬 탁류는 이 광막한 천호동을 할퀴었다. 저지대는 빨갛고 파란 기와집 지붕만 떠있다. 미루나무의 숲이 탁류에 휘어 목놓아 울고 있는 것 같다. 「워커힐」앞 모래사장에 이룩한 식당·수영복잡화점·술집·유람선·학원 등 유원지는 물론 하천부지에 둑을 막아 조성한 주택지의 알록달록 무늬진 지붕도 자취를 감추었다.
새로 개발한 암사동의 주택단지도 탁류가 삼켰고 벽돌공장의 거대한 가마솥도 물에 젖어 굴뚝만 우뚝 서있다·
중심부를 제외한 천호동이 물에 갇히자 남한산성과 광주단지로 뻗는 국도도 차단한 수마는 성내동 일부를 쓸고 굽이쳐 잠실과 송파까지 휩쓸었다.
골격만 세우고 완공을 보지 못한 잠실대교어귀(서울시내 쪽에서 들어가는) 20m가량의 시멘트 교각도 물어 뜯어갔다. 수마는 성수동·휘경동·답십리동 등 저지대를 깔고 앉았다. 화양동의 대한제지도 반신 가량 물에 잠겼다. 사각형의 마당에 제멋대로 떠있는 「펄프」용 원목더미가 흡사 성냥개비를 한줌 뿌려 놓은 것 같다.
탁류는 제3한강교 귀어의 한남동 시장을 비롯한 저지대의 상가를 밟고 그 건너편 반포동·서초동·학동·신사동 등 일대의 영동 대단지를 물바다로 만들어놓았다. 고지대의 국민학교는 모두 수재민들의 「아파트」가 됐다. 서울시가 남 서울 건설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 시범단지로 조성한9백7만평의 단지가 순식간에 잠겼다. 건축중인 시범주택을 온통 망쳐놨다.

<고지대 국민교에 대피>
강남의 주택지로 바구니 속같이 아늑했던 흑석동의 얕은 지대도 침수, 중앙대입구의 상가가 잠겼고 중앙대 운동장까지 물에 잠겨 수중 「캠퍼스」로 화했다.
동작동 국립묘지 입구까지 침범한 물줄기는 조정협회 훈련장에서 거슬러 올라 약 2km에 이르는 사당동 입구 길 양쪽의 개발주택지를 침범, 삼성 사우촌 어귀의 문턱에까지 물이 뻗쳤다.

<용산역 일대는 베니스>
소용돌이치고 굉음을 울리고 흐르는 탁류, 그리고 이따금 초가집 지붕이 버섯처럼 떠내려 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물 구경 나온 시민들로 제1 한강인도교는 가득 찼다.
구 교통부 입구에서 삼각지 「로터리」까지는 「베니스」의 거리, 용산역 구내는 호수가 됐다. 몇 개의 열차가 흙탕물 속에 발이 묶여 있었고 석탄의 산더미에서 흐른 검은 물이 먹구름처럼 탁류의 파도에 밀려가고 있었다.
제1한강 인도교 쪽에서 마포로 통하는 한강 제4로의 강변 「아파트」단지도 침수, 「보트」를 타고 드나들고. 원효로4가 일대의 고급주택지도 마찬가지였다.
여의도 높은 윤중제에 맞부딪친 탁류는 여기서 남북으로 갈라진다. 주력은 북쪽으로 흘러 서울대교를 위협한 다음 제2한강교입구의 합정동과 망원동 일대를 잠기게 했다.

<영등포공업단지 잠겨>
여의도에서 남쪽으로 굽이친 홍수는 신길동·신림동·구로동을 침범했다. 해태제과·「롯데」제과·동립산업·흥아공작소·한국 「타이어」·「펩시·콜라」까지 침수, 46만평의 공업단지 중 약30만평이 침수되어 조업을 중단시켰다. 특히 수출포장 「센터」는 침수로 포장원자재 약 3천만원어치(상공부추산)가 물에 잠겨버려 당분간 수출용 포장용기의 부족사태를 빚을 것 같다.
물은 불보다 더 강했다. 당인리 화력발전소도 제5「엔진」을 「스톱」시켰다. 두개의 굴뚝 중 연기를 내뿜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폐환자 x레이 사진 같아>
남한강·북한강물에다 범람한 임진강물까지 몽땅 합쳐진 김포군 고촌면과 한강이북의 능곡 일대 김포평야는 벼 끝이 안보이게끔 물에 잠겨 망망대해인가 싶었다. 벼 끝이 보이는 곳과 안 보이는 반점의 무늬가 흡사 중증의 폐결핵환자 「X레이」사진 같았다. [본사 김천수 사회부장 HL 1027기상서 취재·송영학기자 촬영(이영백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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