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의 중공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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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공을 방문 중인 「쿠르트·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은 중공 수상 주은내 및 외상 희붕비 등과 「광범위한 국제 문제들」을 토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발트하임」 사무총장은 9월의 27차 총회 개막 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유엔」 회원국들을 방문할 의향을 밝힌 바가 있어 이번 중공방문이 다소는 의례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저간의 사태 진전과 보도로 미루어 보아 「발트하임」 총장이 중공 지도층과 「한국 문제」를 뒷전에서 논할 듯 싶어 일말의 우려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도 그는 작년 말에 취임 선서 직후 중공의 「유엔」가입으로 「유엔」의 보편성이 크게 전진했다고 밝히고 다음 문제는 멀지 않은 장래에 분단국들을 「유엔」에 가입시키는데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는 또 지난달의 「모스크바」 방문에 앞서 소련 지도자들과 토의하게 될 문제들 중에는 분단국가들의 「유엔」 가입이 포함되었다고 밝히고 동·서독과 남·북한의 동시 가입 문제에 언급했었다.
뿐만 아니라 북경발 외신에 의하면 중공 수상 주은내 및 희붕비 등과의 회담에서 한국과 월남을 포함한 「광범위한 국제 문제들」이 토의될 것이라고 전해졌다. 이에 더하여 「발트하임」 총장은 금년 1월의 「워싱턴」 방문을 비롯, 9월의 총회 개막 전에 모든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순방을 마치게 되는데 이들 상임 이사국들은 신 회원국의 가입을 좌우하는 나라들이라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발트하임」 사무총장이 중공 지도층과 국제 정세 일반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마다 할 수 없지만, 비 회원국 당사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그 장래에 영향을 미칠 실질적 토의는 있어서 안될 것으로 생각하며, 하물며 남북한의 동시 가입을 추진·협의한다는 것은 대한민국과 「유엔」의 관계 및 남북한의 현실을 도외시하는 성급하고 무절제한 개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발트하임」 총장에게 무엇보다 상기시키고 싶은 사실은 「유엔」 총회가 48년 12월12일자 한국의 독립 승인에 관한 결의에서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선언했다는 것과, 지금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을 협의한다고 하는 중공은 바로 51년 2월1일자 총회 결의에서 북한의 남침을 격퇴하는 「유엔」군에 대한 적대 행위로 침략을 자행했다고 낙인찍혔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유엔」 헌장은 헌장에 규정된 의무를 수락하고 「유엔」이 과하는 의무를 이행할 의사가 있다고 인정하는 평화 애호국에만 가입을 개방한다고 천명함으로써 「발트하임」 총장 자신이 말하는 보편성에 한계를 긋고 있다.
북한이 「유엔」의 권위와 권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조건하에서는 「유엔」에서의 한국문제토의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거부해 온 것으로 이미 모든「유엔」회원국들에 알려져 있다. 또 지금 남북한은 4반세기여 동안의 분단과 전쟁이 빚어낸 인도 문제의 해결과 통일 과정의 제1보로 기여하게 될 적십자 본회담을 실현시키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으며, 7·4성명에서 밝힌 바와 같이 외부의 관여 없는 자주 평화 통일을 추구하기로 합의했다.
중공 자신도 「닉슨」 미대통령의 중공 방문 후 발표된 상해 「코뮤니케」에서 제3국의 이익을 대신하는 흥정을 배제한바 있으며 「발트하임」 총장도 13일 발표한 첫 연례 보고서에서 약소국들의 입장이 무시되고 강대국들의 의사만이 존중되는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유엔」 총회에서 「한국 문제」와 나아가서 「동시 가입」 같은 문제가 제기되면 「대화 없는 대결」에서 「대화 있는 평화적 경쟁」으로 지향하려는 현 단계에서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확신한다. 이런 여러 가지 관점에서 우리는 남북의 평화 통일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다는 「알제리」 등의 한국 문제 의제 채택안이나 「발트하임」 총장의 「구상」이 철회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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