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호의 세상탐사] 임진왜란도 모르는 미국의 한국통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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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31면

2008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맞붙었던 미국 공화당의 거물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방한한 건 지난 8월이다. 언론에 보도되진 않았지만 매케인은 당시 국내 정계 중진들을 불러놓고 타박을 했다. “월남전 포로로 잡혀 온갖 고문을 겪은 나도 미국·베트남 간 화해에 앞장서는 데 당신들은 왜 일본과 잘 지내지 않느냐”는 요지였다. 과거사·영토 문제를 놓고 집요하게 일본의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 측의 속좁음에 불만을 토로한 거다. 매케인 자신으로선 그럴 만하다. 해군 조종사였던 그는 1967년 하노이 폭격에 나섰다 격추돼 월맹군 포로가 된다. 두 팔이 부러지고 다리엔 총을 맞았다. 포로수용소에서 그를 기다린 건 지독한 구타와 고문이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머리는 하얗게 세고 몸무게도 20㎏ 넘게 빠졌다. 그 후유증으로 매케인은 영원히 다리를 절고 팔을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언사다. 한국이 일본을 쉽게 용서 못하는 건 치욕을 당했다고 느끼는 탓이다. 매케인은 고초를 겪었지만 욕된 일은 아니었다. 치욕은커녕 평생의 자랑일 터다.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 차원에서 한·일 간 중재를 할 때 두 나라의 역사와 감정을 제대로 헤아리는지 의심을 할 때가 잦다. 거의 모든 한국인의 경우 일본에 대한 인식이 1592년 임진왜란 때부터 출발한다. 불행히도 그 기억은 치욕의 역사였다. 그 난리통에 희생당한 불쌍한 민초들의 사연과 조선인 2만 명의 코와 귀를 묻었다는 교토의 귀 무덤 이야기를 들을 때면 피가 솟구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일제강점기 학정이 덧붙여지면 용서할 수 없는 과거사가 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역사는 1620년 이민자들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미 동부에 도달할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776년 독립선언부터 237년, 메이플라워호 도착부터 따져도 400년이 안 되는 역사를 가진 미국인들로선 임진왜란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게다가 괴로운 역사는 쉽게 잊어버리는 게 미국인들의 습성이다. 『미국의 거짓말(Lies Across America)』이란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미 역사학자 제임스 로웬은 이런 결론을 내린다. “미국인들은 긍정적인 일만을 기억하길 좋아한다”고. 수천만 인디언 학살의 역사가 잊혀진 것도 이 탓이다.

물론 미국인들에게 임진왜란까지 숙지하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 한국인들 역시 스웨덴·노르웨이가, 그리스·터키가 왜 앙숙이란 걸 아는 경우는 드물다. 스웨덴은 나치가 노르웨이를 침공하려 하자 아무런 저항 없이 길을 터줬다. 그리스는 400년간 터키의 지배를 받아오다 겨우 독립한 후에도 사이프러스를 두고 영토분쟁을 벌여왔다.

안타까운 건 미국 주류 사회에서 오래된 과거가 아닌, 지금의 한국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국 내 한국 전문가의 부재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미국에 있는 한국통이란 인사들도 대다수가 정확히 따지면 북한통이다. 한국의 역사와 전통보다는 북한 핵무기가 몇 개인지에 더 관심이 있는 이들이다. 대표적인 한국 전문가로 꼽히는 미 외교위원회 연구원 스콧 스나이더에게 이 문제를 한탄하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 사회에 대한 분석에 비해 북한 관련 글의 클릭 수가 두 배 이상인 미국의 세태 때문”이라고.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두둔하는 건 한국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왜 한국인들이 일본군이라면 몸서리치는지 말이다. 워싱턴의 자칭 한국통 가운데 임진왜란을 제대로 아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별다른 지름길이 없다. 꾸준한 국가 홍보와 함께 국가적·사회적으로 한국인 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매케인에 이어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이 5∼6일께 방한해 한·일 관계 중재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양국이 뼈아픈 과거를 씻고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화학적 반응을 촉발시킬 촉매제가 필요하다. 진실된 반성 말이다.

얼마 전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어느 미국인 일본전문가가 이런 얘기를 했다. “일본은 한·중에 수없이 사과를 했다. 더 이상 요구하면 ‘사과 피로증’을 불러 온건파조차 등을 돌릴 것”이란 논리였다. 그러자 즉각 중국 학자가 나섰다. “여러 번 사과한 건 맞지만 곧바로 망언이 쏟아지는 데 어떻게 그게 진정한 반성이냐”는 반격이었다. 미국은 알아야 한다. 한국의 뿌리 깊은 반일 감정을 알지 못한 채 억지로 양측을 갖다 붙인들 밥풀로 벽돌을 붙이려는 격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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