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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옥죄는 '풀뿌리 규제' … 도로 보수비까지 떠넘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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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 27일 오후 3시 전남 여수시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도로. 굵은 빗줄기 사이로 유독물질을 실은 대형 트럭들이 곡예운전을 하듯 도로를 지그재그로 달리고 있었다. 장기간 보수가 되지 않아 도로 곳곳이 패어 있었기 때문이다. 화학업체가 많은 여수산단 입주업체들은 다음 달부터 3억여원을 모아 도로(23㎞)를 보수할 예정이다. 이 도로의 관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인 여수시에 있다. 그러나 여수시는 공장 차량이 많이 다닌다며 비용을 업체에 떠넘기고 있다. 입주업체들은 2010∼2011년에도 도로 보수비용으로 6억6200만원을 썼다. 1억4000만원을 부담한 곳도 있다. A업체 관계자는 “한 해 수천억원의 법인세 외에도 재산세 등으로 지방에만 수십억원의 세금을 내는데 도로 관리비용까지 우리가 부담해야 하나”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2. 11일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85번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기아자동차 조지아 공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속도로에서 조지아 공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기아 불러바드(KIA BOULEVARD)’로 불린다. 조지아주 정부가 건설해 기아차에 무료로 쓰게 하고 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역시 기아차를 위해 특별히 만들었고, 철도는 공장 안까지 들어온다. 주정부는 6600㎡의 연수원도 지어 기아차에 선물했다. 기아 블러바드에서 시작해 앨라배마 현대차 공장까지 85번 고속도로를 따라 100여 개의 현대·기아차 부품업체가 들어섰다. 파급 효과로 조지아주에 생긴 일자리만 1만 개에 이른다.

 한국과 미국 지방자치단체의 현주소다. 네이슨 딜 조지아 주지사는 틈만 나면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을 찾아와 각종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추가 공장 설치를 요청한다. 그러나 한국의 지자체는 도로 관리 비용까지 기업에 전가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7∼9월 전국 40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기업 10곳 중 7곳(67.2%)이 “지방 규제가 과도하다”고 호소했다.

 지자체들은 정부가 푼 규제마저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7월 의료법 시행규칙을 고쳐 병원이 할 수 있는 부대 사업에 숙박업을 추가했다. 종합병원이 호텔을 지어 해외 환자를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행규칙에 달린 ‘시·도 지사가 공고하는 사업’이란 단서가 문제였다. 4년여가 지났지만 어떤 지자체도 병원호텔을 허가한 곳은 없다.

 지자체뿐만이 아니다. 기업들은 중앙정부의 지방 조직에 대한 불만도 컸다. 응답 기업의 66.3%가 가장 큰 불만을 느끼는 행정기관으로 지방 세무서·노동청·환경청을 꼽았다. 세무서에 문의를 하면 컨설팅 업체를 알아보라는 퉁명한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고, 노동청은 10여 년간 아무런 안내도 없다가 갑자기 일용직 고용 신고를 안 했다며 과태료를 물리는 식이다. 특히 기업들은 “청렴도나 공정성은 좋아졌지만 공무원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나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경제활성화를 강조해도 지자체와 현장 공무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주의인 중국에서도 지방정부가 기업 유치를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며 “지자체장이 선거를 의식하다 보니 근본적 지역 발전은 무시하고 목소리 큰 지역 이익집단에 휘둘려 규제를 남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영훈·박진석·김영민 기자, 웨스트포인트(미 조지아주)=채윤경 기자, 여수=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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