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6주년 맞는 「그레이스·켈리」왕비|불우아동 위해 바쁜 나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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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956년 4월 19일 「모나코」왕국의 2만여 국민은 기쁨과 동시에 경애하는 국왕 「레이니에」공이 선택한 여성에게 다소 비판적이었다. 기쁨이라면 국왕이 33세의 나이에 결혼을 하기로 결심하여 국민이 오랫동안 바라던 후계자 탄생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고 비판적이었다는 점은 왕비가 어딘가 약간 차가운 느낌을 주는 「할리우드」의 영화배우였다는 점에 있었다.
그후 국민은 왕비의 몸가짐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했다. 그러자 국민이 큰 기쁨으로 여길 경사가 속출했다.
57년 1월 23일 「카를린」왕녀가 탄생했고 이듬해 58년 3월 14일에는 「아르베르」왕자 탄생, 65년 2월 l일엔 「스테파뉴」왕녀가 태어났다.
이것은 왕가의 기쁨일 뿐 아니라 왕비에 대해서 마음속으로 굴복했던 「모나코」국민으로서도 흡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애초의 동정은 점점 존경으로 변하고 그것이『만장일치의 애정』으로 탈바꿈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항상 어린이들을 위해서 지칠 줄 모르는 애착을 갖고 있다.
불행한 어린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가의 「오토」태공을 회장으로 하는 협회인 AMADE(어린이의 벗 세계협회)를 창설했으며 이 협회의 해외지부를 만들기 위해 각지를 방문했다.
그녀는 『어린이의 벗 세계협회는 세계최소인 이 왕국으로부터 국경을 차례로 넘어 전세계로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1971년 7월에는 젊은 어머니들에게 모유에 의한 육아의 미덕을 장려함을 목적으로 한 국제모유연맹 「시카고」대회에서 「그레이스」왕비는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는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었다.
『나는 세 아이들에게 모유로 기르는 것 이외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제가 항상 생각했던 대로 제 젖을 먹였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특히 자기가 국왕의 처라는 생각에서 모유를 먹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점도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서구문명이 부패 파괴될 우려가 있는 사회적 부도덕의 파도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는 가정의 기초를 굳게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며 이 기초는 모친의 가슴에 안긴 유아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레이스」왕비는 자녀들의 교육, 특히 언젠가 국왕이 될 운명의 「아르베르」왕자의 교육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머니의 역할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행복한 성인이 될 기회를 갖기 위해 아이들은 양친의 애정으로 아주 깊은 영향을 받게 마련인 것입니다. 애정이라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절대 중요한 것입니다. 돈이나 예의바른 것 등은 그 다음의 문제지요.』
그녀는 왕비로서 왕국 적십자 또는 그녀가 나라 안에 창설한 여러 가지 협회의 회장으로서 다망함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위해 자유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이 자유시간을 갖기 위해 71년까지 매주 목요일을 자녀 곁에서 하루종일 보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아이들을 위한 「쇼핑」을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습니다.
「카롤린」 「아르베르」 「스테파뉴」가 치과의사의 치료를 받으러 갈 때라도 제가 항상 함께 가지요.』
71년 10월부터 장녀 「카롤린」(16)이 영내의「가톨릭」계 학교기숙사에 가기 전까지의 15년간 아이들은 누구도 그녀 곁을 떠나 지낸 적이 없다.
결혼 후 15년간 공적인 생활에서의 「그레이스」왕비의 존재는 국내외로부터 받는 경의와 선망 때문에 자못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영원한 진실을 믿는 사람들을 지금도 기쁘게 해주고 있는 이 15년간의 결혼생활에 있어서「그레이스」왕비는 순수히 그 결혼의 행복을 확고히 자기 것으로 다지는데 노력했다. 【NEA=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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