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마닐라만 피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인천=박정원기자】『영화에서나 보던 해상「갱」이 그렇게 무서운 것인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무법천지였습니다.』 지난 25일「필리핀」의 「마닐라」항 앞바다에서 해상「갱」을 만났던 조양해운 소속 「모닝·스타」호(4천3t·선장 이병갑·44) 선원들은 권총·「카빈」·M1총·엽총·「만도」(50cm정도의 칼) 등을 든 40여 명의 해적들이 배에 기어오르던 모습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고 말했다.
「모닝·스타」호는 1일 상오 7시30분쯤 선원 27명을 태우고 인천항 외항 팔미도 앞바다에 입항, 검역 중에 있고 총격으로 부상한 태철민씨(23·3등기관사) 등 6명은 간단한 검역만 마치고 인천도립병원으로 운반,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산탄총 1발이 태씨가 얼굴 두 군데 가슴·목 등 7군데에 파편이 박혀 있고 갑판수 이성태(46) 1갑판원 정만흥(30) 3갑판원 김학기 (34) 잡역 진철권(41) 조리사 백남웅(31)씨 등이 모두 3∼4군데씩 산탄조각이 박혀 있다.
○…이 배가 「말레이지아」의 「타와우」항에서 원목 17만6천 입방「피트」를 싣고 인천으로 오다 태풍 「오러」호를 만나 「마닐라」항에 대피한 것이 26일 상오 4시30분쯤, 두 시간쯤 뒤에 해상「갱」을 만났다 했다.
4척의 「커누」(길이 8m·폭 2m 정도)가 사방에서 배를 향해 접근해 오는 것을 보고 「마닐라」항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해상 장사꾼들쯤으로 알고 있었는데 포위한 「커누」가 거의 동시에 배에 접근, 권총·「카빈」·M1·엽총 등을 난사하며 선창으로 기어올랐다는 것이다. 이들은 계속 공포를 쏘며 선실로 들이닥쳐 태씨 등 6명은 이때 총소리에 놀라 2층 선실에서 뛰어나오다 1발의 산탄에 모두 그대로 쓰러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20∼25세의 청년들로 울긋불긋한 원색남방「샤쓰」등을 입고 있었고 절반 가량이 「히피」머리의 덥수룩한 차림이었다.
이들은 이어 선원들을 모두 선실에 감금, 꼼짝 못하게 하고 TV·녹음기·시계·옷가지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모두 털어 달아났고 선장실에 뛰어 들어 권총 2발을 쏘아 선장실 벽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렇게 배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지 1시간쯤 지난 뒤 선실에 갇힌 선원들이 밖으로 나왔을 때 이들은 이미 「모닝·스타」호에서 5∼6백m쯤 달아나고 있었다는 것.
「갱」사건 이후 조사한 피해액은 배 소속품 2백만원 어치, 개인용품 1백70만원 어치 등 3백70만원 어치에 이르렀다. 선장 이씨는 『우리 선원들이 이들에게 꼼짝없이 당한 것은 지난해 일본선원 한 사람이 이들에게 대항하다 맞아 죽은 일을 알고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선장 이씨는 이를 현지경찰과 우리 영사관에 곧 연락, 영사관 측의 주선으로 응급치료를 받았는데 현지경찰은 이튿날인 26일 상오 간단한 조사를 하고 간 뒤 아무 조치도 없었다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