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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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달 중에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아빠의 봉급 받는 날 일게다. 그리고 이날처럼 짜증나는 날도 또 없다.
매달 봉급과 함께 복권 다섯 장씩을 손에 건네준다.
1회부터 지금까지의 복권이 서랍에 그득하다. 그 많은 복권 중에서 그 동안 1백원짜리가 두어 번 맞았을 뿐이다. 돈으로 환산하면 자그마치 1만5천원에 가깝다.
어찌나 마음 아픈지 1회부터 지금까지 귀 아프게 들어오던 대답을 예기하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져 먹고 시비를 가려 본다. 아니나 다를까 또 그 대답이다.
『한달 30일 중에 29일은 희망에 살고, 하루만 실망하면 되는 건데 값으로 따지면 싸지 뭘 그래.』 그리고는 빙그레 웃고 만다.
따라 웃기는 하면서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참 그럴 것도 같다. 우리네처럼 가난하고 보면 그런 희망이라도 있어야지 그것마저 없다면 질식할 법도 하다.
그런데 큰 일이 났다. 복권 파는 날이 한달 한 번에서 이제는 세 번씩이나 된단다.
뻥 뚫린 가계부 구멍을 통하여 아빠를 다그친다.
『뭐 두 장 사고 두 장 사고, 한 장 사면 그게 그거야.』

<그건 우리처럼 집 없는 사람에게 집을 마련해 주는 거야.>
웃고 있는 아빠의 표정에서 뻔한 그의 마음을 읽으며 가계부로 되돌리는 내 눈 속에도 우리가 낸 돈으로 모아져 이루어진 집이 보인다.
제발 우리네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나 당첨되었으면…. <정복희(서울 용산구 보광동 265의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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