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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문화로 본 한국의 서민의식|도민예술과 종교의 분석에 의한 접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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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의 서민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그 서민들은 어떤 문화를 형성해 왔는가? 서민이 형성해온 민화와 구비문학, 민간연희와 토속신앙은 그들의 예술의욕과 정신과 미중사상, 사회의식을 어떻게 대변했는가? 「크리스천·아카데미」는 「토속문화로 본 대중의식」을 주제로 한 17일「세미나」를 갖고 시민사회의 「대중」이 아닌 서민의 의식세계를 역사적으로 살펴봤다.
「민화로 본 대중의 예술의욕」을 발표한 김철순씨(한국미술출판사대표·미술사)는 독특한 우리 나라 민화에 나타나고 있는 서민의 예술과 의식을 분석했다. 즉 민화는 민속화라고 불리는 보통 무명인이 일반대중의 실용적·신앙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작된 그림이다.
이것은 한민족의 시원적이고 본질적인 예술의욕을 표현한 것이다. 비록 한 시대, 한 사회에 주조를 형성했던 예술가들의 작품과는 유를 달리하나, 분명히 반주류의 예술성을 표현하고 있다.
민화제작가들은 흔히 꿈속에서 속세의 괴로움을 잊어보려 했고 따라서 그림을 시와 동요와 회상의 세계로 끌어올린다. 여기엔 정통회화에서 찾기 어려운 그들의 색채가 나타나고 대담한 시도도 한다.
김씨는 이 민화와 다른 민속예술품·공예품과의 공통점을 추출했다.
①단순화 즉 모든 사물의 파악·창조에서 대상을 단순화하고 있다. 순수한 내용과 양식 속에 멋과 아름다움을 찾고있는데 이것이 곧 대중의 예술의욕의 근원이며 세련된 심미감의 소산이다.
②해학과 승화된 감정-긴 역사 속에서 겪어야 했던 쓰라린 고뇌가 예술로 승화되고 해학과 풍자의 형태로 나타났다. 괴로움을 꿰뚫는 기쁨, 슬픔을 웃음으로, 차가운 현실을 따뜻한 미소로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나타나고 있다.
③상징과 우화의 조화-보편적 진리와 일상의 상상을 단순한 선으로. 특수한 양식으로. 이야기로 표현하고 있다.
④세련된 감각과 특출한 예술성-이것은 실용성을 위주로 했던 대중의 공예에서도 예술의 경지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비문학에 나타난 서민정신」을 발표한 김열규 교수(서강대·국문학)는 특히 민요에 나타난 서민의 반항을 설명했다.
도민을「가지지 못한 사람」으로 규정한 김 교수는 권력·지위·돈을 갖지 못한 서민이 「그 갖지 못한 것」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민화에서 분석한 것이다.
그는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안호의 전설」과 「고려사」에 나오는 「중미정노역」 에 관한 기록, 그리고 「서경별곡」의 수련들이 강압적인 징역에 시달린 참담한 민중의 생활을 얘기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었다.
현실 속에서 억압된 서민들은 정치적인 현실, 사회적인 현실 속에서는 그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설 속에서 「반대에 의한 발전」이란 구조를 마련, 처절한 패망의 순간에서 이 패망을 넘어선 비극적인 의지의 승리로 맛보고 있다는 것.
『절대적이고 압도적인 정치적·사회적 현실의 멍에 속에서 결행한 이 「역설적 승화」가 바로 서민정신』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인형극「박첨지」에서 서민에게 곤욕을 당하는 평양감사, 선덕여왕을 그리다가 화귀가 된 지귀의 얘기, 호랑이를 물리치는 아이들의 얘기들에서 서민의 역전 승이 예시되기도 한다.
부에 대한 서민의 반항은 「노랑이 얘기」「도척선생 얘기」에 나타나는데 여기선 더러운 부자의 인색을 희극적인 웃음으로 처리하는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서민과 부자의 위치를 역전시키는 종류의 서민 정신을 나타냈다는 것.
한편 「민간연희에 나타난 민중사상」을 말한 조동일 교수(계명대·국문학)는 농악·서낭굿·별신굿·원놀음·꼭둑각시놀음·탈춤 등 민간연희가운데 가면극과 꼭두각시놀음을 통해 서민사상에 접근했다.
가면극을 서낭굿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 조교수는 서낭굿이 자연과의 갈등을 주술적으로 해결하려 한데 대해 가면극은 양반이나 평면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뜻이 있다고 봤다.
하회별신굿놀이니 야유·오광대·산두놀이·해서탈춤 등 가면극은 양반의 신분적 특권을 부정하고 그 억압에 항거하는 민중의 의지를 나타낼 뿐 아니라 양반은 비정상적이고 병신스런 인간임을 폭로, 자유로운 활동으로 충만 된 서민의 삶을 긍정한다.
특히 조교수는 김 교수가 서민을「가지지 못한 자」로 규정한데 대해 더 나아가 당상탈춤의 노장과 같은 「민중의 사상과 서로 용납되지 않는 충고방식을 가진 자」도 포함시켰다.
한편 유랑연예집단인 사당패가 공연하는 인형극도 봉건사회 체제와 그 관념적 지주를 공격하는데는 가면극과 일치한다. 가면극과 인형극이 지닌 사상은 사상가의 그것이 아닌 단지 생활에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역사의식의 산물이다. 봉건사회의 붕괴와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의지가 이들 민중사상속에 살아있다. 현실에 기반을 둔 항거와 거부의 정신이 뚜렷하다는 것.
한편「토속신앙에 나타난 사회의식」을 말한 장적근씨(문화재전문위원·민속학)는 무속·가정신앙·부락제·유교제례 등 토속신앙이 오랜 역사성을 가지면서 사회적 기능을 해오면서 민중의 사회심리의 발견에 영향을 주었는가를 봤다.
토속신앙을 5백년간의 유교전통 등 억압 때문에 단순히 미신으로만 의식하는 현실을 비관하면서 그는 이들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부락제나 가정신앙은 농어민 스스로가 미신을 제거해오면서 유구한 옛날부터 소박한 생활의 지혜로서 생활과 자연에 밀착시켜온 것으로 보는 것.
신성기간의 설정을 통한 정화운동, 이웃과의 화목과 단합정신을 통해 협동의식마저 높일 수 있었던 부락제 등이 새마을운동에 역행하는 것일 수 없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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