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풍」 속에 표류하는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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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단기국회와 공전사이에서 청담을 거듭해오던 국회기류는 정상운영의 한발 앞에서 검은 구름에 휘말렸다. 공화당은 2일 세 번째의 단독국회는 조용히 문을 닫고 6월15일 공동소집에 의한 82회 국회를 열기로 한다는 전제아래 총무회담을 제의했다. 그러나 신민당은 공화당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의사당에서 국회정상화에 대한 국회의 장단과 공화당의 성의표시를 촉구하는 농성투쟁에 들어가고 만 것이다.
신민당이 공화당과의 대화를 거부한 것은 그 동안 공개의원총회의 토론을 거쳐 정부에 낸 질문서 처리가 부당하다는 항의에서 시작됐다. 주월군 철수문제. 비상사태 선언과 보위법 문제 등 3개항에 걸친 질문서에 대해 정부가 서면답변대신 관계국무위원이 국회에 나와 구두로 답변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이에 대해 신민당은 국회의 사정을 알고 있는 정부가 구두답변을 하겠다고 한 것은 답변의 기피라고 몰아세워 백두진 국회의장에게 항의했다. 백 의장은 이런 항의가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여 정부에 서면답변을 촉구하는 공한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공화당의 브레이크에 걸리고 만 것이다.
국회법 1백16종에 의하면 『정부는 질문서를 받은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서면 또는 구두로 답변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정부로서는 국회가 개회중이니까 답변을 듣기로 국회가 결정하면 언제든지 나가서 답변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니 합법적인 초치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민당은 이런 정부에 대해 국회가 공전하고 있은 상황을 아는 정부가 서면답변을 안 한 것은 실질적으로는 답변의 기피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조처자체가 법리론 상으로는 하자가 없기 때문에 국회운영의 책임을 진 의장에게 화살을 돌린 것
신민당소속 의원들은 지난30일 백 의장에게 ①질문서에 대한 정부답변을 의장직권으로 본회의 의제로 올려 신민당 의원 만으로라도 정부답변을 듣게 하든지 ②아니면 국회 본회의 성립이 어려우니 정부에 대해 해이 답변을 국회에 내도록 촉구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신민당의 요구에 대해 의장은 ②항을 택해 즉각 정부에 공한을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백의장의 단안을 위한 구상은 공화당의 반발에 부딪쳤다.
정부 쪽의 이병희 무임소장관은 적법한 조치를 취한 정부에 대해 국회의장이 또 다른 요청을 한다는 것은 정부만을 곤란하게 만든다고 항의했다. 현오봉 공화당 측근도 며칠 지나면 국회가 정상화되는데 막바지에 풍파를 일으킬 필요가 없지 않으냐면서 의장은 여야협상을 주선해달라고 한 것이다.
정부·여당이 질문서에 대한 회답을 국회정상화 때까지 늦추려는 것은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즉 질문서에서 야당이 제기한 문제는 국회가 정상화되면 야당이 맨 먼저 들고나올 정치문제들이다. 따라서 이중으로 정치공세를 당하기보다는 국회가 개회되면 정부가 질문서에 대한 답변을 하는 것으로써 이 문제처리를 마무리 짓고 다른 의안 처리도 해야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이래서 백 의장은 약속한 단안도 못 내리겠고 야당은 약속을 어긴 백 의장, 그리고 백 의장으로 하여금 국회의장으로서의 직권행사를 못하게 막고 있은 공화당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제기, 이번 회기가 끝날 때까지 의사당에서 철야농성투쟁을 하기로 결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세 번째 단독 소집된 국회에선 백두진 의장이 공화당과 신민당의 중간지점에 서서 국회정상화를 위해 무던히 애썼고 그 때문에 의장실과 공화당간부진 사이에 불협화가 있기도 했다.
의장단으로서는 야당이 공개의원 총회를 여는 동안 적극공세로 나오는 만큼 납득할 만한 성의표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의장단은 1일 단기 국회에 의한 이번 국회의 조기폐회 안을 냈다가 공화당의 차가운 반응에 마주치기도 했다.
백 의장이 정부에 서면답변 촉구 공한을 내기로 한날 현오봉총무. 이병희 무임소장관. 문태준 운영위원장으로부터 『의장의 단안이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는 얘기를 듣는 자리에서 백 의장은 『도대체 당쪽과 긴밀히 연락해야하는 장경순부의장이 당의 방침에 대한 소상한 저변 얘기를 모르고 있니 않느냐』는 짜증도 냈다고 한다.
어떻든 국회정상화 협상은 공화당-의장단-신민당의 삼각관계를 끌어오다 벽에 부딪쳤다. 신민당은 백두진 국회의장에게 약속을 지키든지, 그러지 못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해명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여야의 틈바구니에 낀 의장으로선 어떤 조처도 취하기가 어려운 때문이다.
이런 장벽 때문에 며칠 전까지만도 밝게 보이던 82회 임시국회의 여야공동 소집은 분명하게 불가능한 상태로 밀려가 버렸다. 다만 공화당이 이번 회기가 폐회되는 6월6일 이후 국회소집요구서를 단독으로라도 내겠다는 방침을 바꾸지 않는다면 대화는 6월 중순께 트이게 될 한 가닥 출구는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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