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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삼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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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근대화 소리를 들으면서부터 잊혀져 간 옛 표현들이 숱하게 많다. 『육간 대청에 수란 치마를 끌고…』하는 표현도 그 하나다. 『육간 대청』이란 바로 고대광실』을 말한다. 돈이나 세도가 많아서 호화롭게 산다는 뜻이다.
아득한 옛날에는 모두가 움집과 귀틀집에서 살았다. 신라 때에 이르러서는 삼십오김입택이란 게 있었다.
그게 이조 시대에 이르면서부터는 99문 짜리 집까지 생겼다. 왕족이 아니면 1백간을 넘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던 때문에 그 이상으로 크게 짓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런 호화 주택의 대청 마루가 대개 6간이었다. 그 가장 전형적인 게 지금 비원에 남아 있는 연경당이다.
대청에 이르려면 솟을대문을 들어서서 행랑 마당이라는 바깥마당을 지나 중문을 또 열고 들어가야 한다.
이처럼 깊숙한 곳에서 안방마님은 찬모·침모·주비, 그리고 「행랑것들」을 거느리고 수란 치마를 질질 끌면서 대청 위를 서성거렸다.
그러나 『6간 대청』이란 말도 요즘은 조금도 잘사는 실감을 풍기지 않는다. 그보다 더 호화롭고, 규모가 큰 현대식 주택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간 대청』이 부와 권세의 상징이라면 『초가삼간』은 가난과 평화의 상징처럼 예부터 우리네 귀에 익어 오던 말이다.
어린이들의 동요에도 애써 금도끼와 은도끼로 나무를 다듬고 깎아 세워 양친을 모신다는 게 『초가삼간』이다. 고작 꿈을 꾼대야 그 정도였던 옛사람들이었다.
『초가삼간』이면 한가족이 살만 하다고 옛사람들은 보았다는 뜻도 된다. 또한 비록 『초가삼간』이라도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도 있다.
그러나 『초가삼간』 이란 말이 우려에게 던져 주는 「이미지」는 이것뿐이 아니다. 초가에서 우리는 시골과 고향을 연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속세의 사람들이 오지 않는 곳… 백조는 끝없이 높이 날고, 외론 배 가물가물 홀로 떠가네, 하찮은 세상살이 별 것 없는데 공명 찾아 반생을 허둥댔다니….』
이런 김부식의 시에 어울리는 풍경에는 꼭 박이 주렁주렁 달린 초가 지붕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풍류의 멋만이 아니다. 우리네 민속의 이를 데 없는 아름다움과 향수를 우리에게 안겨 주는 것이 초가지붕인 것이다.
우리네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 한 외국인은 그 여행기에서 한국 초가지붕을 아름답다고 예찬한 적도 있다.
그런 초가집이 사라져 가며 있다. 그걸 애석하게 여기는 것이 단순한 회고의 심정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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