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한글 서간 판독의 문제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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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요즘 문화재 애호정신이 고조되어 일반인·학자·매스컴 등이 모두 협력하여 발굴과 고증과 소개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민족문화 발전을 위해 다행한 일이다. 이번 2백53년 전의 관속에서 부장물로 의류와 미망인의 제문이 출토된 것은 국문학계의 괄목할 일이다.
이번 출토된 한글제문은 문헌 가치로는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르지만 그 생성 동기와 보존 경위에 있어서 유예가 흔치 않은 희귀한 존재이다. 더욱이 그것이 여인의 한글 육필인 면에서 국학상 여러 부문에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일부 소개된 내용에 오류와 미완점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이 제문이 한글 흘림체이기 때문에 판독에 혼란이 빚어진 것 같다.
제자원리가 다른 한글의 흘림체는 한자의 초서보다도 더 자형상의 객관성이 없으니 많은 시간과 고증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 육서기록을 해독하는데는 기록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여러 상황 가계 필체 서간문의 투식 국어학적 이론 등을 총 동원하여 이의 상승작용에서 해결되어야만 한다.
후손들의 구전 증언도 참고는 될지언정 오히려 착오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필자가 상당한 작업을 통해서 해독한 원문을 별도로 제시하겠거니와 다음에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전제점을 열거해 보면
①이 기록이 유형상 명칭은 광의 적으로는 서간문이고 협의적으로는 제문이다.
②미망인 장씨의 부 정최능이 객사했다는 후손의 구전은 사실이 아니며,
③전처 이씨 소생에 세기(기묘생), 홍기(정해생) 두 아들이 있으니 홍기는 당시 11세이며 본문 중 <차자>에 해당하며,
④후처 장씨 소생에 형기(정유생)가 있으니 당시 3세로 본문 중 <유하지아>에 해당하며, ⑤장씨가 재취로 온지 5년만에 최능이 사망했음이 동래정씨 대동보와 사암공파보와 본문의 내용에서 입증된다.
⑥미미의 <슉인>은 외명부 칭호<숙인>이 될 수 없으니, 부 최능의 관직이 없었으며 설혹 관직이 있더라도 자칭 <숙인>이라 할 수 없다.
필자는 <숙인>으로 추정하는 바 자기를 하대하는 또 합장된 전실과 구별하는 <유하>의 뜻, 또는 <숙=조>의 뜻에서 추측은 하지마는 미상한 점이다.
⑦봉투는 별도로 없고 제봉투로 접어 전통적 규식에 맞는 것이다.
종래 필자가 종사해 오던 서간문학을 통해서 볼 때 국문학의 원형은 한글 서간이고 국문학의 육성자는 여인이었음을 주장할 수 있는바 이번의 장씨 제문은 과거에 없었던 필부의 작품으로 단순한 서간문식인 제문이 아니고 그대로 훌륭한 문학작품이다.
이것을 통해서 이조여성의 모럴이 생사의 사이에서 표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인목 왕후가 서궁 안에서 자결을 참아가면서 처와 모의 도리를 다하고자 고민했던 그 술회문과 인빈이 쓴 편지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쓴 것도 무대가 궁중이었다 뿐이지 삼종지도의 쇠사슬에 얽매었던 이조여성의 보편적인 비오이었다.
여하튼 이번 장씨의 제문은 규방문학의 확립에 큰 이정표가 되며 국문학의 정수는 규방문학에서 찾아야 할 운명성을 계시하는 것이다. [김일근<건국대 교수·국문학>]

<장씨 제문의 내용>…종텬의 변을 만나 가 을 두 려 골돌 셜우미 흉격의 막히오니…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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