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협력위의 정경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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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일 협력위원회가 경제부문과 정치부문으로 분리되어 경제부문은 한·일경제위부회에 흡수하기로 됐다. 이와 같은 분리결정은 오는 24, 25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리는 한·일 협력위원회 제28차 상임위원회에서 정식으로 결정되리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한·일 협력위원회 한국측 정일권 위원장과 김주인 사무총장이 동경에서 일본측 「기시」회장과 「야스기」사무총장 사이에 의견교환이 있었다고 한다.
한·일 협력위원회를 경제부문과 정치부문으로 분리하여 전자를 한·일 경제위원회에 흡수코자하는 소이가 주로 정치적 고려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능률을 올리기 위한 기술적 고려에서 나온 것인지, 썩 분명치는 않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조야동향이 대중공관계 개선을 적극 모색하고, 또 「두개의 한국」 추구노선을 점차로 양성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에 비추어 상기 분리조치가 단순한 기술적 고려에서 나온 것으로만은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는 반공 국가이기 때문에 공산권과 접촉을 시도하면서도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반해 일본은 공산당을 합법화하고 있고, 중공과의 관계를 정당화하고 평화공존을 하기 위해 북경 대해서 부지런히 추파를 보내고 있는 나라다.
이러한 국내정치여건상의 차이나, 국제정치상 좌표의 차이는 최근 두 나라 관계를 점차로 미묘하게 만들고 있다. 일본의 대 한국문제 기본정책은 한국과 사이좋게 지내고, 한국의 안정과 번영에 기여코자 하는데 있다하지만, 이와 같은 대한자세가 중공 및 북괴의 기피를 사고 있다하여, 최근 일본정부는 재야세력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한국과의 기존관계를 유지하되, 그것이 대 중공정책이나 대 북괴정책 추구에 장해가 되지 않도록 세밀한 고려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주은래4원칙」은 일본의 업자들로 하여금 중공진출허가를 미끼로, 대 대만거래포기와 또 한국시장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수락하는 업자들의 수효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한·일 협력관계는 중대한 시련기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하에 한·일 협력위원회의 기구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이 시책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게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속단을 불허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일 협력위에서의 정경분리가 일본이 소위 「정경분리의 원칙」에 따라 북괴와의 경제적·기술적 교류를 확대하고 나아가서는 두개의 한국정책을 공공연히 내세우는 것을 용인하는 계기가 된다면 결코 이를 수행할 수 없다.
대외협력기구에서의 정경분리는 일·화 협력위원회(일본과 국부중국간의)에 먼저 적용되리라 한다. 이것은 좌등수상 「대만조항」(69년 「닉슨」-좌등 공동성명 중 대만에 관해서 언급한 부문)의 소멸을 공언한 직후에 취해진 결정이니 만큼 대만과의 정치적 관계를 소원케 하기 위한 조치의 제일보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자아내게 하고있다. 「대만조항」과 「한국조항」을 애써 결부시키고자 하는 것은 일본식 발상법의 특징이지만, 우리는 대만조항이 소멸됐다는 해석과 발언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한국조항」도 없어졌다는 인상을 자아내는 것을 극히 경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일본의 대 중공접근을 오늘의 국제정세로 보아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그것이 이웃에 있는 제삼국의 이익을 희생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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