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에 세 필 그림 그리는 김은호 화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81세 고령의 이 당 김은호 화백이 기력도 정정하게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화필을 들었다. 서울근교 광나루의 강가에서 10일째 기숙하면서 청 화·철사·신사 등 민속도자기의 유 약으로 세 필의 그림을 그리는 그는『힘들어서 다시 더할 수 없는 일이라 이번에 기념 적 작품을 만들겠다』는 부푼 의욕을 보인다.
신세계화랑의 주선으로 이번 도화에까지 손대게 됐다는 그는 민속 도예가 안동오 씨와의 합작으로, 즉 안씨가 빚어놓은 그릇들에 맞춰 그림을 그리면 역시 안씨의 가마에서 구워내게 된다. 전시회는 오는 5월말 예정으로 이번 2백 점의 백자를 제작, 출품할 계획이란다.
이조 최후의 어진 화가인 이 당은 옛날과 같은 우수한 도화를 남기려는 게 소원이지만, 굽과 구연의 「디자인」화한 무늬는 시간이 없어 생략할 수밖에 없노라고 토로한다.
특히 중국의 채색도자기와 같은 그림이 소성과정의 기술 때문에 불가능한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그는 6·25동란 중 부산에서 한때 경질도기에 그려본 경험을 회상한다.
이 당의 세 필화는 화단의 독보적인 존재. 인물·산수·송학·화조·어 해 등 그의 특징 있는 정교한 필치로 항아리와 병·연적·필통의 그림을 그리는데, 인물도 1점을 온종일 걸려 그리기도 한다. 흔히 사군자로 처리하는 근자의 도화경향에선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노화백의 정성이 그릇마다 아롱져 있는 것이다. 다만 불 가마 속에서 그 정성스런 그림이 오 롯이 재생되는가가 문제. 소성에서만 성공한다면 그것은 바로 민속도자기의 진일보와 발전의 가능성을 기약하는 것이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