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한일합동경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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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닉슨」 미대통령의 중공방문 이후 한일간의 첫 공식접촉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던 제4차 한일민간합동 경제위회의가 예상했던 대로 회의분위기에 몇 가지 주목할만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회를 거듭하면서 줄어들던 일본측 참가상사수가 이번에는 1차 회의 당시의 절반 수준까지 격감했으며 동시에 한국 측에서도 참가기업확보 문제에 부심하여 양측이 다같이 이 모임에 무성의했다는 점이다.
둘째, 합의결과에 관한 공동성명발표를 피하고 합의사항의 확인발표라는 특이한 편법을 채용함으로씨 일본의 참가기업들도 대 중공관계를 심각히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역상에 있어서의 협력 이외에 기술협력 문제가 새 주요의제로 채택되는 한편, 한국의 중소기업들에 대한 경영관리기술면의 협력 필요성과 일본기업들의 다각적 대한자본참가 문제 등이 논의됨으로써 한일협력의 방향이 그 방법과 깊이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인상을 뚜렷이 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일본은 1백64억 「달러」(2월말)를 기록한 막대한 보유외화의 처리대책으로서 「아시아」결제동맹결성 및 이와 관련한 「아시아」준비은행설립구상을 펴는가 하면 많은 은행이 국제투자은행설립을 추진하는 등 대외투자의욕이 전례 없이 고조되고 있으며, 한국은 3차 계획 소요외자 38억「달러」가운데 18억「달러」를 일본에 의존할 계획으로 있기 때문에 어느 의미에서는 양측의 입장에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하겠다.
그런데도 양측 민간기업이 다같이 이번 모임에 불성실했던 것은 격변하는 주변정세를 관망하려는 일본기업들의 태도와 장기화한 불황 하에서 앞으로의 경제동향에 대한 전망을 뚜렷이 갖지 못한 한국기업들의 투자자제경향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중공접근은 미국과 제휴관계에 있는 일본기업들에 대한 「주4원칙」적용을 배제하게되리라는 기대가 일본 경제계에 대두하고 있음과 관련해서 볼 때, 일본·중공경제관계의 전개는 한일협력의 금후와 밀접한 함수관계에 있음을 부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3차 계획의 가장 큰 몫을 한일협력에 기대하는 한편 그 범위와 심도를 더하게 함으로써 계획의 성패를 일본의 향배에 도하는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솔직이 말해 작금의 국제정세변화는 우리의 예상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며 그런 점에서 미·일 편중, 특히 대일 의존에 박차를 가하는 방향의 개발정책은 그 집행기반을 불안정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계획자체에 차질을 가져올 염려가 크고 세계경제의 다극화추세와도 유리되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재의 국제적 상황은 명확한 전망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그러기 때문에 개발정책을 성급히 강행하기보다는 개발계획을 어느 정도 조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금후의 정세전개를 좀더 신중히 관망하면서 대처해 갈 것을 권하고 싶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공산권에 대한 투자 및 무역자유화 선언, 일본·소련간의 구체화하는 경제협력계획, 일·북괴접근움직임과 EC권의 「아시아」 진출포석 등에서 나타난 각국의 현저한 정책적 방향 선회는 우리의 경제외교가 하나의 심각한 시련기를 맞이했음을 입증해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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