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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배운 ‘정가’에 마음 정화 느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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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9호 05면

4년간 공부해온 전통성악 정가를 15일 저녁 충무아트홀에서 선보인 문희. [사진 충무아트홀]

“갑자기 연락해서 공연하니까 오래요. 우리는 가톨릭 대모-대녀 사이라 종종 만나고 그래서 대충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보통 심장 갖고는 무대에 오르기 어렵거든요. 원래 문희는 차분한 성격이에요. 연극을 해 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저렇게 태연하게 공연할 수 있는가 깜짝 놀랐어요.”

영화배우 문희, 43년 만에 대중 앞에 다시 서던 날

 왕년의 톱스타 최은희(87)는 후배 문희(66·본명 이순임·백상재단 이사장)의 변신이 대견하다는 표정이었다. 1960년대 윤정희-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로 활약하다 스물넷이던 71년 11월 20일 한국일보 장강재 부사장과 결혼하며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진 그녀다.

 이날의 행사는 ‘신운희와 함께하는 나루음악회’. 신운희 단국대 국악과 초빙교수 밑에서 한국 전통음악인 정가(正歌)를 4년간 공부해온 문희가 나루회 멤버(이민지 걸스카우트 부총재, 박문자 학교법인 만강학원 이사장, 김영미 ‘황금 바늘’ 원장)와 함께 실력을 발휘하는 자리였다.

문희를 격려하는 원로배우 최은희(사진 왼쪽).

 15일 오후 7시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의 250여 객석은 초만원을 이뤘다. 사회를 맡은 최종민(국립극장 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교수는 “조선을 지배한 유교 정신의 핵심은 예와 악”이라며 ‘수양으로서의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정악 ‘만파정식지곡’ 연주에 이어 중허리 시조 ‘임그린 상사몽이’를 노래하기 위해 단아한 흰 한복 차림의 공연단이 걸어나와 돗자리에 앉았다. “아, 예쁘다”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한숨처럼 새어나왔다.
 
 “임그린 상사몽(相思夢)이 실솔(蟋蟀·귀뚜라미)의 넋이 되어 / 추야장(秋夜長) 깊은 밤에 임의 방에 들었다가 /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볼까 하노라.”
 
 고종 때 가객 박효관의 시조를 읊는 소리가 낭랑했다. 김영미의 ‘기러기 산이로 잡아’, 이민지의 ‘청산리 벽계수야’에 이어 이제 문희의 단독 무대. 사설시조 ‘팔만대장(八萬大藏)’을 부르기 위해 이번에는 흰 저고리, 연녹색 치마 차림으로 다시 앉았다.
 
 “팔만대장 부처님께 비나이다 나와 임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 여래보살 지장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오백나한 팔만가람 서방정토 극락세계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 후세에 환토상봉하여 방연(芳緣)을 잇게 되면 은혜를 사신보시 하리라.”
 
 무대 뒤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보여주는 영상이 스치듯 흘러갔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을 속도감 있게 처리해 생기를 주었다. 가사가 자막으로 나왔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금박 자수가 박힌 한복을 입고 가곡 ‘편수대엽’을 노래하는 문희(사진 왼쪽). 2 장구를 치고 있는 문희(사진 오른쪽).

 이제 다 함께 가곡(歌曲) ‘편수대엽’을 부를 차례. 최 교수가 먼저 이해를 도왔다. “우리의 전통성악인 가곡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외국 사람들이 매우 궁금해 하지만 전수자 부족으로 제대로 들려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양식 음률에 근거한 가곡과는 다른, ‘심신을 정화해주는 맑은 노래’로 꼽히고 있죠.”

 1부 격인 ‘전통의 향기’에 이어 2부 격인 ‘창작의 울림’에서는 채치성 편곡의 ‘백구사’와 김영동 작곡의 ‘어디로 갈거나’가 이어졌다. 은색 저고리에 초록 치마를 입은 문희는 자리에 서서 어깨를 들썩이다가 흰색 신발 코가 살짝 보이도록 치마를 여미며 맛깔스러운 손사위까지 보여줬다.

 장구 연주자 중 가장 기량이 뛰어난 자 또는 장구만의 개인놀이나 장구놀음을 말하는 설장구 코너에서 검정 한복에 붉은 토시와 옷고름으로 남장 여인의 멋을 낸 네 명의 여류 가객은 굿거리-자진모리-휘모리로 이어지는 신명 나는 장단을 선보였다.

 마지막 레퍼토리인 아리랑에 앞서 최 교수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리랑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전라도에서는 말을 길게 밀죠. 경상도에서는 짧고 강하게 발음합니다. 그 차이를 생각하며 들어보시죠.”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원조 아리랑)는 “아리아리랑 아리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진도아리랑)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조옴 보소~”(밀양아리랑)로 이어지더니 앙코르 무대에서는 결국 객석과 무대를 하나로 묶었다.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도, 고흥길 가천대 석좌교수도, 영화배우 엄앵란과 성우 고은정도 모두 신이 나서 무대로 나가 어깨춤을 들썩였다.

 약 100분에 걸쳐 12곡의 공연이 끝나고 로비는 문희와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로 인산인해였다. 이곳저곳 ‘끌려다니며’ 포즈를 취하던 문희는 “43년 만에 이게 왠 인기인가”라면서도 활짝 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초등학교 시절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을 본 이후 열혈 팬이 돼버렸다는 화가 사석원씨도 가까스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기다리던 최은희를 발견한 문희는 금세 몸을 낮춰 그를 꼭 껴안으며 감사인사를 했다.

 이종덕 충무아트홀 대표는 “나이 들어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라며 “우리 노래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다는 의미도 크다”고 이번 공연의 의미를 짚었다.

 공연 소감을 묻는 질문에 문희는 “잘하진 않았어도 최선은 다했다”고 털어놓았다. 정가를 하게 된 이유로는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선생님에게 열심히 배우다 보면 2~3시간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라며.

 앞으로 대중 앞에서 활동을 시작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손사래를 치며 “그럴 생각은 전혀 없고 그저 꾸준히 연습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금 누가 제일 생각나느냐고 물었다. 43년 만에 대중 앞에 나타난 미녀 배우는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한참 만에 한숨을 살짝 쉬었다. “…하아.” 그리고 살포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다시 무대 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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